통진당 시대착오적 대북관 유지
종북 논란 자초 해산지경까지
당 내부 비민주성·폭력성도 한몫
거대정당 해결 못한 대안 제시
수권 목표로 실현 가능 정책 발굴을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진보정치에 새 판짜기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진작에 통진당의 ‘종북주의’와 결별하고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판을 흔드느냐다. 헌재 결정으로 진보진영이 종북주의와는 결별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향후 진보정당은 소모적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정책이든 인물이든 대중의 신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묵은 이념, 비민주성이 대중으로부터 괴리
진보정당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통진당이 헌재로부터 정당 해산 결정이라는 철퇴를 맞게 된 데는 통진당 스스로가 종북 세력을 끊어내지 못한 채 해묵은 이념 논쟁에만 휘둘리면서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었다. 김종철 노동당 전 부대표는 “통진당의 실패는 시대착오적인 대북관을 유지하면서 비롯됐다”며 “북한 문제를 다룰 때 따뜻한 비판자의 역할 정도를 견지했어야 하는데 일방적인 지지자로 침묵하다 보니 불필요한 종북 논란이 불거지고 대중과 괴리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석기 사태가 불거졌을 때 통진당 지도부가 이들과 결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강제 해산은 예고됐던 일”이라고 꼬집었다.
2012년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와 중앙위 폭력 사태 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당 내부의 비민주성과 폭력성도 민심을 등 돌리게 한 원인으로 꼽혔다. 이념 정당으로만 기능할 뿐 정책 생산 등 대안 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을 지냈던 박용진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민노당의 원내 진출 이후부터 복지나 일자리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시기에 북한 문제에만 매몰돼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인위적 야권연대를 주도한 새정치연합 등 야권 진영도 통진당의 자정능력을 방기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종북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통진당과 다시 손을 잡았던 진보신당이나 총선을 앞두고 연대에 나섰던 민주당도 통진당의 혁신에 눈 감았다는 측면에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과 호흡하는 정책과 리더십 제시가 관건
전문가들은 그러면서 통진당의 강제 해산으로 진보진영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종북 논란이 자연스럽게 해소된 만큼 진보진영으로서는 전화위복의 상황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위적인 합종연횡을 통한 단순한 세력 재편보다는 여야 거대 정당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에 대해 진보정당 나름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성찰과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보정치가 집중해야 할 방향으로는 대중의 신뢰회복이 우선 꼽혔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헌재는 종북주의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일 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주의적 가치는 진보정당이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선진국의 좌파정당들이 지역공동체나 협동조합과 밀접하게 결합해 생활주도형 사회운동을 주도해가는 식을 차용해 새로운 진보정당의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특히 뜬 구름 잡는 이슈 제기가 아닌 수권정당을 목표로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제시해 대중의 신뢰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희웅 민 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새누리당까지 나서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집권하는 상황에서 차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반짝 이슈 파이팅 보다는 정교하고 구체적인 실행 능력이 담보된 정책으로 거대 정당과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본부장은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대표 인물을 발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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