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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SAT처럼 문제은행 거론… 문항 사전유출·관리비용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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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SAT처럼 문제은행 거론… 문항 사전유출·관리비용 고민

입력
2014.11.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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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委 구성은 근본 개편보다 출제 오류 줄이는 데 무게 중심

일부선 절대평가제로 전환 요구, 본고사 부활·논술 강화시킬 수도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열린 '대입 정시 대비 교원 진학지도 설명회'에 참석한 진학 담당 교사들이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열린 '대입 정시 대비 교원 진학지도 설명회'에 참석한 진학 담당 교사들이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989년 5월 어느 날 저녁. 정원식 문교부 장관은 전임 장관들에게 “학력고사를 없애고 대학입학 적성시험(훗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만들면 어떨지”를 물었다.(중략) 이미 이전의 국가고사이던 학력고사는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교과목을 대상으로 단편적 지식을 측정함으로써 암기 위주의 획일화된 입시교육을 강화시킨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이 발간한‘대한민국 교육 40년’ 중)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잇따른 문제 출제 오류로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출제 방식을 재검토하고, 수능의 근본 취지를 다시 살펴보라고 지시한 최근 상황을 보면 수능 도입이 처음으로 논의된 25년 전과 비슷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암기 위주의 획일화된 입시교육을 강화시킨 주범’이 수능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입시제도 3년 예고제’에 따라 당장 체제 개편보다는 출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수능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근본적인 입시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수능 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도 정치권과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문제은행…오류 줄지만 문항 유출 우려

수능 출제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처럼 문제은행식으로 바꾸는 방안이 거론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문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시험시기에 따라 문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출제와 검토에 시간을 구애 받지 않아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권과 정부 내에서도 비중 있게 고려해 볼 사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은행 방식은 문항이 사전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와 문제은행을 관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점이 문제다. 이와 관련해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문제 유출은 보안 강화를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고,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기존 시스템을 이용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총은 수능 제도를 유지하되 대학 이전 교육과정(초ㆍ중ㆍ고 12년 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학생들에게 학교 교육 내용에 기반한 기초적인 수준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능이 절대평가 성격의 문제은행식 ‘국가기초학력평가’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평가 통한 자격고사화는 본고사 부활 우려

일각에서는 문제은행식 수능 출제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해 이번 기회에 아예 수능을 폐지하거나 절대평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수능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교육현장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막대한 세금이 드는 시험이지만 정작 대학에 학생 선발 편의를 제공하는 데 그 역할이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능을 폐지하거나 자격고사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일정 점수가 넘으면 합격(PASS) 혹은 불합격(FAIL)으로 하거나, 일정 점수대별 등급을 정하고 그 점수대에 이르면 1, 2점 차이가 나더라도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1점을 더 맞기 위해 과도하게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대입에 대한 수능의 영향력 상실로 이어지고, 선발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대학들이 본고사를 부활시키거나 논술 시험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 경우 사교육 시장에 미치는 여파도 커진다. 변별력을 상실한 수능이 학생선발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을 출신 고교에 따라 차별하는 ‘고교등급제’를 강화하는 빌미가 될 가능성도 있다. 수능의 절대평가제 전환을 요구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하병수 대변인은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어떤 전형이든 변별력 위주의 전형이 될 수밖에 없다”며 “수능 절대평가는 대학서열화 해소와 함께 논의돼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초당파적 교육기구로 장기 대책 마련해야

걸핏하면 물수능, 불수능 논란이 이어지고 문제 오류가 빈번해지면서 현재의 수능이 어떤 방식으로든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는 상황이다. 입시 혼란을 무마하기 위한 대증요법을 마련하는 것보다 이 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입시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8학년도부터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 도입을 시사하면서 논의의 장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통령, 장관 바뀐다고 뜯어고쳐지는 입시정책보다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초정권적, 초당파적인 차원의 교육위원회를 구성해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교육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장기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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