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종호씨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부문 입선
"끝까지 부모 걱정하던 딸 떠올라… 술잔 내려놓고 다시 붓을 잡았죠"
“겨울을 이겨내고 제일 처음 꽃을 피우는 게 매화거든요. 매화를 그린 건 다시 꿋꿋하게 살아가겠다는 의미에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김영은양의 아빠 김종호(54)씨는 지난 달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부문’에 하얀 매화를 그린 작품을 출품해 지난 14일 입선했다. 평소 문인화를 즐기던 김씨가 사고 직후 붓을 꺾은 지 1년 만의 일이다.
“엄마, 아빠 미안해. 그리고 너무 사랑해.” 금요일에 돌아온다던 막내딸은 친구 휴대폰 속 울먹이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하늘의 별이 됐다. 발 밑에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엄마, 아빠를 걱정했다. 작별 인사는 휴대폰 속 영은이 목소리를 알아 본 친구 동생 덕분에 뒤늦게야 부모에게 전해졌다. 겁에 질린 채 사랑한다고 외치던 딸의 마지막 모습을 아빠는 믿을 수 없었다. 10년 넘게 취미 생활로 즐겨오던 문인화를 이후 그만뒀다.
그리고 화실을 찾는 대신 매일 술잔을 들었다. ‘어떻게 한 날 한시에 생때 같은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 비통함으로 하루에도 수 차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사소한 시비만 붙어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이 들만큼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6개월이 넘도록 매일 소주 서너 병을 비우면서 몸도 점차 쇠약해졌다. 그런 김씨를 보다 못한 한 지인이 지난해 12월 “다시 만났을 때 영은이가 얼마나 속상해하겠느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막내 딸이 마지막까지 부모를 걱정하다 떠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김씨는 술잔을 내려놓고 어렵게 다시 붓을 잡았다.
지난 1월부터 김씨는 퇴근하자마자 안산미술협회에서 운영하는 단원화실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화실을 찾은 날이면 자정에 가깝도록 딸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꿋꿋이 살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담았다. 4월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선한 작품은 그렇게 영은이를 그리워하며 완성한 매화 그림이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이어 김씨는 5월에 경기도미술대전, 6월에 안산미술대전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영은이와 단원고 학생들을 하늘로 날아오르는‘나비’로 표현한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슬픔을 삭이는 길을 택했지만 아직도 터져 나오는 참척의 아픔은 헤아릴 길 없다. 김씨는 “영은이가 태어날 때 받았던 보자기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머리맡에 두고 잔다”며 “아직도 영은이가 ‘아빠’하고 부르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눈물을 떨궜다. 김씨는 “남은 가족들과 영은이를 위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이 명백히 이뤄질 때까진 자식을 온전히 가슴에 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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