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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하니 쉽게 속고, 빠르니 잘 속인다

입력
2015.11.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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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불황으로 사기와 공갈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신용이 붕괴된 우리사회의 모습이 대법원의 범죄통계 수치로도 확인됐다. 2일 대법원이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서 진행된 형사공판사건(1,2,3심 기준) 가운데 사기 공갈 범죄가 5만9,270건으로 전체 범죄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16.2%)를 차지했다. 2013년 사기 공갈 범죄가 5만4,866건(15.3%)인 점에 비춰보면 건수와 비율이 모두 늘어났다.

통상 불황기에는 고수익을 원하거나 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심리를 공략하는 사기 범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제 상황과 함께, 기술의 진보가 사기 공갈 범죄를 부추긴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에 보지 못한 사기 범죄의 진화가 이뤄져 관련 범죄가 폭증했다는 것이다.

한 해 처음 재판에 넘겨진 사기 공갈 사건의 수치는 경기불황과 상당한 연관 관계를 보이게 마련이다. 실제로 25년 간 범죄통계를 보면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이런 유형의 범죄가 증가했다. 1990년대 초중반의 경우 사기 공갈죄로 기소된 사람은 1만 명(1심 기준)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개인파산이 잇따르던 1998년에는 2만1,397명을 기록,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섰다. 다시 미국발(發) 금융위기 여파가 절정에 달했던 2009년에는 3만9,788명으로 10년 만에 2배 가량이 늘어났다. 경제가 안정세를 보이던 이듬해인 2010년 사기 공갈 피고인은 3만4,720명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경기불황이 만성화하면서 2013년에는 3만8483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결국 4만 명 선을 넘었다.

지난해 형사공판사건의 죄명 가운데 사기 공갈 다음으로는 상해·폭행(2만7,344건)이 많았으며 절도·강도죄(1만7,197건) 횡령ㆍ배임죄(1만370건) 강간추행죄(8,160건)가 그 뒤를 이었다. 또 지난해 강간ㆍ추행죄로 형사재판 1심에 기소된 피고인은 5,511명으로 전년(4,317명)보다 27.7% 증가했다. 성범죄가 친고죄(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을 받는 범죄)에서 벗어난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10년 전보다 절반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심에서 구속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2만8,543명으로 전체의 10.6%에 불과했다. 2005년 구속 피고인 수(5만6,657명)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그쳐 불구속 수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구속영장 발부율은 80% 수준으로 하락했다. 법원은 지난해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 3만5,767건 가운데 79.5%만 발부했다.

형사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경우는 12만4,834건으로 10년 전(6만2,169건)에 비해 2배 상승해 피고인의 변호권이 신장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선변호인 선정 이유는 ‘빈곤 등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가 11만999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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