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파트너로 인정 안 하는 행보, 정리해고 시 사회안전망 강화가 우선
희망퇴직·권고사직 등 수시로 가능, 우리 노동시장 경직돼 있지 않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로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에 이어 임금 체계 개편까지 언급하며 노동시장의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자 노동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정규직이 누리는 고용 혜택을 줄이자는 것인데 노동시장의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고용시장 유연화, 사회안전망 강화 등과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인데도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아부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 부총리의 최근 행보는 노동계를 대화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통행식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할 정도로 정부 부처간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노사정 빅딜 필요한데 일방통행하는 정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최 부총리의 정규직 해고 완화 언급에 대해 “현 정부가 노동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전 노정관계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막상 집권 후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철도노조 파업 강경 대응, 민주노총 본부 강제진입 등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최 부총리가 최근 언급한 노동 관련 사안들은 노사정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빅딜’을 이뤄야 하는 문제인데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먼저 입장을 표명해 노사 갈등만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노사정위에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주문하기 보다는 정리해고 시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재부가 폭주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노사정위원회는 현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8월 다시 본회의를 열었지만 통상임금, 임금체계 개편, 정리해고문제 등 노동계 굵직한 현안을 논의하기로 한 노동시장특별위원회는 아직 세부 안건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노동시장특위 공익위원인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전문위원들이 매주 만나 논의하고 있지만, 단어 하나 선정하는데도 노사 의견차가 크다”고 말했다.
정규직 고용안정 수준도 낮아
학자들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들이 겁이 나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는 최 부총리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을 하향 평준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정규직의 고용안정 수준은 최 부총리가 언급한 만큼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명시적인 해고가 아니어도 권고사직, 희망퇴직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고,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으면 정리해고도 수시로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 노동시장이 유럽에 비해 경직돼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올해 8월 통계청 경제활동부가조사에 따르면 국내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근속년수는 7.1년, 비정규직은 2.6년에 불과해 OECD 가입국가 중 근속년수가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또 국내 임금노동자가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2012년 기준 53세로 최 부총리가 우려하는 정년 60세 보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일부 대기업 정규직이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보장 받지만, 이 역시 비정규직 양산의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노동시장의 5% 미만”이라며 “이들로 인해 노동시장에 왜곡이 발생해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임금 처우 개선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정규직 고용 시장을 유연화하겠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덴마크의 경우, 해고를 자유롭게 하되 3년간 기존 임금의 80%를 실업급여로 보장한다. 비정규직 보호대책부터 나와야 하향평준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기업이 임금을 조정하는 방안은 비정규직 사용 처럼 고용을 유연화하는 방식도 있지만, 단축근무, 전환배치, 직무개편 같은 기능적 유연화를 통해 임금을 줄이는 방식도 있다”며 “최소한 노동계와 논의 가능한 어젠다를 설정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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