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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혐오의 이름은

입력
2017.01.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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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토요일,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시위대의 행렬과 마주쳤다. 대부분 60ㆍ70대쯤 되어 보였고 일부 장년층도 섞여 있었다. 대부분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었으며, 개중 일부는 계엄령을 발동하고 군대를 일으킬 것을 촉구하는 인쇄물을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스피커에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음량으로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군가가 울려 퍼졌다.

왜 대학로였을까? 연극, 뮤지컬 등 무대극과 거리공연의 메카로 자리 잡은 이곳은 이제 대규모 시위 장소로서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선동을 당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으니, 직접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소명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럴싸하다. 한 박근혜 지지자 모임엔 젊은이들이 찾는 강남역 맛집에 들어가 넌지시 “태극기 집회가 멋있다” “탄핵 기각이 될 것 같다” 등의 대화를 나누라는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의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시위를 바라보며, “틀딱 극혐” 따위의 대화를 나누며 낄낄댔다. 틀딱이란 틀니를 부딪치는 소리를 희화화한 것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노인층을 이르는 멸칭이다. 극혐은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의 준말이다. 탄핵 반대자들의 대학로 시위는 젊은이들에겐 모욕과 멸시를 포함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들이 민주주의라 착각하는 어떤 반공 체제와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민주주의는 그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근혜는 특검의 수사나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 무도한 암군임이 명확하다.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동시에 군가를 부르고 군대 동원을 촉구하는 아이러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시위가 아니라, 차라리 쿠데타를 선동하는 친위대의 행진에 가까운 것이었다. 시위의 목적부터 방법까지 모든 것이 그릇되었다.

그럼에도 서글퍼졌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노인들은 우리의 세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대학로와 강남, 홍대가 아니라, 종로 공원의 벤치와 그 앞 국밥집, 포장마차에 있는 존재들이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말을 섞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쉬이, 약한 사람들의 약한 지점을 비하하는 멸칭을 내뱉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그들은 젊은이들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공간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시위대를 지나쳐 극장으로 올라갔다. 건물 안에 들어서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던 군가는, 다행히 극장 안에 들어서니 거의 들리지 않았다. 청년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일부 중년층도 섞여 있었다. 연극 내용은 이랬다. 바람을 피우던 남자가 이를 발각 당할 위기에 처하자 “난 사실 호모”라고 거짓 고백을 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모” 연기를 하는 주인공을 등장인물들은 “호모새끼”라며 혐오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질겁하면서 폭소를 터트렸다. 소수자에 대한 멸칭이 분 단위로 쏟아져 나왔다.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다.

사실 멸칭은 그들이 불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있다 여기기 때문에 붙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틀딱’ 이란 멸칭이 그들이 불의와 부정을 위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기에 붙여진 것이라면, 그럼 이 무대 위에서 죄 없는 이들에게 쏟아진 멸칭은 왜 붙여진 것이란 말인가. 정녕 멸칭이 불의에 대한 벌이라면, 무대 위 “호모새끼”들을 혐오한 사람들 또한 그 스스로를 위한 멸칭을 즉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노인들의 시위대는 불의를 지키기 위해 태극기를 흔들었고, 젊은이들은 그들을 멸시했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는 멸칭이 분 단위로 터져 나오는 연극을 감상하며 폭소했다. 그건 어느 살 에이게 추운 날의 대학로 풍경이었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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