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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보복 프레임의 허구

입력
2017.10.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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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기무사 등에 의한 댓글 부대 운영, 문화예술인 블랙 리스트, 방송 등 언론장악 시도의 정황이 담긴 문건 등이 드러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기관 등에 의해 다양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던 불법적인 선거운동과 정치관여 활동에 대한 진상 규명 행위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보복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건을 부풀리고, 조작하는 독재정권의 전형적 수법이다. 1973년 박정희 유신 정권 때의 김대중 납치 사건과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8명의 사형을 집행한 1974년 인민혁명당 사건, 전두환 정권이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예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보수정권의 국기문란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보복 프레임은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전형적 정치공학적 시도다. 야권이 쟁점화를 시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관련 금품 수수 사건을 이명박 정부 국정원 등의 정치적 탈선과 등치시키려는 시도는 무모하며, 진실을 가리려는 국면 전환의 프레임 정치는 진부하다.

박근혜 정권에서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기관 등에 대한 수사는 형식적이고 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정치적 ‘부당행위’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실질적인 조사가 시작된 사건이다. 이명박 정권의 일탈행위 조사를 정치보복이라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지난 정권의 국가기관의 탈선을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사안과 대척점에 놓으려는 시도가 공허한 까닭이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적폐’를 다 꺼내보자는 제1야당과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정치보복 주장은 보편과 상식의 영역을 넘는다. 국가정보기관에 의한 광범위한 정치적 관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 중대한 혐의이다. 이를 정치보복으로 프레임 지으려는 시도는 온당하지 않으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적폐청산을 통해 국정수행의 정치적 동력을 유지하고 이를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하기 위한 무리한 과거사 들추기라는 야당의 시각도 정치적 비약이다. 집권세력이 적폐청산 노력을 통하여 국민의 지지를 견인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민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이 아니다. 헌법적 일탈 등의 과거에 대한 심판과 청산은 대통령 선거 때의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헌법 유린적 사찰 행위와 방송장악 시도는 민주공화국에서 있어서는 안 될 범죄행위들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위임된 국가권력을 주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 측의 사적 소유물로 인식하는 왕조시대의 유물이다. 촛불로 상징되는 주권자의 직접민주주의적 의사표시는 구시대의 유물을 광정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를 정치보복의 프레임으로 치환하려는 낡은 수법은 무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주권자의 직접 선출에 의해 구성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정권이었다. 탄핵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5년 단임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정치적 불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권 비판을 냉전주의적 색깔론을 동원하여 비난하고, 좌편향과 이념 편향 등 안보이데올로기의 퇴행적 반공주의에 정권의 안위를 구걸하는 저급함은 정권적 차원 이전에 인간적 품위와 자존의 문제다. 정치적 배제와 억압이 일상화했고 기본권 탄압과 인권 유린이 상시화했던 유신 독재의 망령과 성격이 다르다 해도, 정부 비판을 좌경용공으로 몰고 가려는 인식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정신적 지주로서 파시즘에 저항했던 역사가 크로체(Benedetto Croce)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다. 과거는 지난 일로 치부될 수 없다. 헌법적 일탈을 과거사로 치부하려는 인식은 반민주적이다.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말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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