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기부한 롯데가 기부액을 깎기 위해 3개월간 협상을 벌인 것으로알려졌다. 하지만 최순실 씨의 최측근인 고영태씨가 직접 나서는 등 압박이 커지자 굴복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의 직접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일 롯데에 따르면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과 이석환 대외협력단 CSR(기업사회적책임)팀장(상무)은 지난 3월 사실상 최순실 씨가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K스포츠재단과 처음 접촉했다. 이전부터 K스포츠재단은 “엘리트 스포츠 육성을 위해 제안할 일이 있다”며 롯데에 면담을 요청했고, 결국 3월 17일 정현식 K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 등이 직접 서울 소공동 롯데 정책본부(그룹 본사) 사무실 24층으로 찾아왔다. 정 전 사무총장 등은 대외협력 부문 책임자인 소 사장과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했고, 이후 실무 차원의 협의는 이 상무가 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K스포츠재단 요청의 요지는 “대한체육회가 소유한 하남 땅에 엘리트 스포츠, 특히 배드민턴·승마 등 비인기 종목을 육성하기 위한 시설을 지으려는데 땅은 우리가 마련할 테니 건축 비용을 롯데가 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K스포츠재단이 롯데에 요구한 금액은 75억 원이었다. 롯데가 “너무 많다”는 반응을 보이자 K스포츠재단은 5억 원이 적은 70억 원을 수정 제시했다.
70억 원 역시 부담스러웠던 롯데는 “절반인 35억 원을 낼 테니 (K스포츠재단이 말하는 1개 체육인재 육성 거점에) 다른 한 기업을 더 끼워 절반씩 분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겨레신문이 입수해 공개한 K스포츠재단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내부 문서(3월 28일 작성)에도 “롯데가 약 35억(건설비의 2분의 1) 지원 의사 있으나 협의 후 알려주기로 함”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K스포츠재단은 이런 롯데의 ‘읍소’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른 기업들도 나머지 4개 거점에 다 하나씩 지원하기로 돼 있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몇 차례 이어진 실무 접촉 장소에는 최순실 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 씨가 ‘고민우’라는 가명이 박힌 명함을 들고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롯데 등 대기업과의 협상 타결을 위해 최순실 씨가 자신의 심복과 같은 고영태 씨를 급파해 청와대의 의중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했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3개월에 걸친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가 신동빈 회장 등에 직접 협조를 요청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스포츠재단 측은 “다른 5개 거점도 기업들이 다 참여하는데 롯데만 안 할 거냐”는 식으로 롯데를 집요하게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 관계자는 청와대 직접 개입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전경련을 통해 이미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 설립 당시부터 청와대의 뜻이 반영됐다는 것을 전달받은 상태였고, K스포츠재단이 집요하게 다른 5개 거점도 기업들이 다 참여하는데 롯데만 안 할 것이냐는 식으로 압박해 거부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롯데케미칼 등 롯데 계열사들은 CSR 관계자 회의 등을 거쳐 5월 70억 원을 분담, 공식 기부 계좌를 통해 K스포츠재단에 송금했다. 하지만 송금 약 열흘 만에 K스포츠재단은 ‘부지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롯데에 70억 원을 공식 기부 계좌를 통해 돌려줬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압수수색(실제 6월 10일 개시)이 임박했다는 수사 정보를 미리 입수한 최순실 씨 측이 수사 이후 ‘뒤탈’을 염려해 서둘러 반납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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