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

등록 : 2018.05.31 04:40
수정 : 2018.06.01 07:09

“장애인 이웃 안돼” 車로 막고 연판장 돌리고

등록 : 2018.05.31 04:40
수정 : 2018.06.01 07:09

집값 하락ㆍ안전 위협 이유 들어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입주 막아

퇴출 논의하는 입주자대표회의도

시설 장애인 57%가 “퇴소 희망”

내년부터 탈시설화 시범사업 불구

주민 님비 여전하면 공존 어려워

“장애인식 개선 교육 확대 필요”

지난 24일 대구 서구의 한 빌라 입구에 장애인 가정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자필서명이 담긴 연판장이 붙어 있다. 대구장애인인권연대 제공

“장애인 입주를 결사 반대합니다.”

지난 24일 오전, 대구 서구의 A빌라 건물 곳곳에 입주민 전체(10가구 중 9가구)의 자필 서명이 담긴 연판장이 붙었다. 이 빌라 6층의 한 가구를 대구시가 ‘장애인자립생활주택’으로 매입해 중증장애인 3명이 입주할 예정인데, 입주민들이 “이사를 오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입주민 일부는 빌라 출입구를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차량으로 가로막고 엘리베이터 작동도 멈춰 놓았다. 장애인 가구가 현관에 경사로를 놓고 집안 화장실에 안전바를 설치하는 등 공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이를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서준호 대구장애인인권연대 대표는 “십수년간 시설에 갇혀 살던 중증장애인 3명이 각자 자신의 방을 갖고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했는데 이웃들 반대로 이사도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비장애인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가 깨졌다”고 한탄했다.

장애인자립생활주택 ‘장애인 시설’ 간주

시설에 갇혀 있던 중증장애인들의 탈(脫)시설 열망이 거세지고 있지만, 지역주민들로부터는 여전히 환영 받지 못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부차원의 지원책 마련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이해와 배려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12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중증장애인 2, 3명이 함께 가정을 꾸려 생활하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 144곳(2016년말 기준)을 마련해 지원해 주는 자체 사업을 하고 있다. 시설이나 부모의 품을 떠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희망하는 중증장애인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종의 쉐어하우스다. 각 지자체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등을 매입ㆍ임대해 공간을 일정기간 빌려주는데, 중증장애인들이 독립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어서 소규모라도 시설이 관리하는 그룹홈 등과는 차이가 크다.

현재 중증장애인 가구 입주를 앞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A빌라는 최근 대구시가 2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주민들은 장애인자립생활주택도 다수의 중증장애인들이 몰려 사는 장애인 시설과 똑같이 생각해 “장애인 시설이 왜 일반 거주지역에 들어오느냐”며 입주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엔 집값 하락은 물론 거주환경 악화, 자녀 안전 위협 등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구 서구청 관계자는 “건물 매입이 끝났기 때문에 당장 공사를 진행하고 장애인들이 입주해도 위법사항은 없다”며 “‘자립생활주택은 시설과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주민 반발이 거세 설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빌라 입주민 대표는 “31일 예정된 부구청장 면담에서 입주민 입장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서구 한 빌라 주민들이 지난 24일 장애인 가구의 입주 공사를 못하도록 출입구를 차량으로 막아놓은 모습. 대구장애인인권연대 제공

“장애인가구 퇴출시키자”는 이웃

A빌라 사례처럼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좌절하는 일은 이번 만이 아니다. 대구시의 경우 지난해 7월 달서구의 B아파트에 자립생활주택 1가구를 매입했지만 주민 반발에 밀려 도로 매각해야 했다. B아파트는 2016년 말 이미 자립생활주택 2가구가 입주한 상황이었는데 시에서 1가구를 추가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입주민 중 일부가 “왜 우리 아파트에만 장애인들이 들어오느냐”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5년 영등포구 C아파트에 자립생활주택 1가구를 마련해 지적장애와 뇌병변,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 3명이 입주했는데, 입주 후 1년여가 지나자 입주민들이 ‘엘리베이터 사용이 불편하다’ ‘이상한 눈초리로 자녀를 힐끔거린다’ 등의 민원을 제기해 이들의 퇴출 여부를 논의하는 입주자 대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장애당사자들이 이런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7조)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해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됐다.

‘탈시설’ 추진해도 시민의식이 걸림돌

이처럼 장애인과의 공존에 거부감이 큰 인식은 장애인들을 결국 시설로 내몰게 된다. 장애인거주시설은 2006년(288개)에 비해 2016년(1,505개) 5배 이상 급증했고, 시설에 수용된 인원도 같은 기간 2만여명에서 3만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2012년 조사를 보면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52%가 사생활 부재 등 시설 방침이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고 봤고, 57.5%가 퇴소를 희망했다. 장애당사자들의 탈시설 운동이 계속되자 문재인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2020년부터 장애인 탈시설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자립을 지원할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해도 지역민의 혐오시설을 꺼리는 ‘님비(NIMBY) 현상이 여전하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송미란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비장애인들이 토로하는 불편함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생기는 오해가 대부분”이라며 “장애를 이해하는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지역주민들에 대한 장애인식개선교육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박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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