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막말과 외교정책보다 더 파괴적인 게 ‘트럼포노믹스’(Trumponomicㆍ트럼프 경제정책)다.” 미국 워싱턴의 정통 평론지 ‘애틀란틱’의 데릭 톰슨 수석 편집자는 9일 보스턴 지역 WBR 방송에 출연, ▦이민자 추방 ▦미국 공공부채 원리금 재조정 ▦발권력을 동원한 부채 상환 등 트럼프가 주장하는 경제 정책을 ‘트럼포노믹스’라고 지칭한 뒤 “이런 것들이 실제로 이행되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심각하면서도 멍청한 공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톰슨 편집자의 비판은 기본적 경제원리와 금융시장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트럼프의 대형 말실수가 연달아 터진 직후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 6일 CNBC 인터뷰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천문학적 부채(19조2,600억달러ㆍ2경1,880조원)를 해결할 비법이 있다며 채권자와의 채무 재협상을 들고 나왔다. “나는 부채의 왕”이라고 말하며, “만기가 돼 갚아야 하는 국채 가운데 일부는 상환하지 않은 채 ‘협상’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민주당은 물론이고 주말 내내 전문가 집단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자 트럼프는 말실수를 바로 잡으려는 듯 월요일(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채무 재조정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짧은 경제적 식견을 또다시 드러냈다. “미국 정부라면 무엇보다도, 돈을 찍어내기 때문에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황당한 주장이 연거푸 터져 나오자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이날도 전 세계의 금융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위험한 발상이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세계 금융시장의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의 ‘안전성’에 의심이 가면 국제 금융질서가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전문매체 마켓워치는 발권력을 통한 채무상환에 대해, “모든 미국인이 금융시장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가 경제 현안과 관련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난했다.
보수주의 정책연구기관 ‘아메리칸 액션 포럼’의 더글러스 홀츠 에이킨 대표는 “국제 금융계에서 믿지 못할 상대로 여겨지는 일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며 “북한 경제처럼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도 트럼프 주장대로 정책을 실시해 미국 국채의 안전성이 흔들리면 “2008년 금융위기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겨질 만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채무 재조정이 결국 제살 깎기라는 점도 부각시켰다. WP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국채의 18%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방정부 산하의 각종 연금과 펀드들이 투자목적으로 보유한 물량도 23%에 달한다”며 채무 재조정은 결국 미국 서민의 부담으로 귀결된다고 반박했다.
열렬한 진보주의 성향으로 평소부터 미 공화당의 주장과 경제 정책을 비판해온 폴 크루그만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트럼포노믹스’의 위험성과 비현실성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차기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당위로 연결시켰다. 그는 이날 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의 무지는 경제상황을 철저히 비관적으로 왜곡해온 공화당의 구조적 행태와 연결된다”며 “호감이 가지 않더라도 클린턴과 민주당은 최소한 기초적 사실관계 정도는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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