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자제 요청 4일 만에 자유북한운동연합 기습 살포
뒤늦게 살포 사실 파악한 정부 "표현의 자유 규제 못해" 되풀이
통일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장밋빛’ 남북관계 구상을 설명하던 지난 19일 대북전단 10만장이 기습 살포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통일부의 무능과 무책임한 대응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연초 달아올랐던 남북간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은 당사자가 “정부 공문이 와야 살포 중단을 고려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늘어놓는데도 통일부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 영역이라 규제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0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영역이어서 강제로 규제할 수 없으며 민간이 자체 추진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진행된 전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경기 파주시에서 대북전단 10만장을 기습 살포한 것에 대한 입장 설명이었다.
이 당국자는 “주민들의 신변 안전에 명백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에는 해당 단체에 현명한 판단을 당부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도 “살포 계획이 사전에 파악될 경우 100% 못 날리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단 살포가 기본권에 해당하는 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더라도 강제로 막을 문제는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박상학 대표가 공문을 요구한 데 대해 이 당국자는 “직접 만나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공문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5일 통일부 당국자가 그를 직접 만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풍자영화인 ‘인터뷰’ DVD를 전단에 날려보내려는 계획과 관련, 자제를 요청한 지 불과 나흘만에 전단 살포가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상황 악화를 막을 대책에 대한 고민은 전무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탈북자단체 하나 제어하지 못한 채 이 단체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을 사실상 묵인함으로써 북한에 대화 거부의 빌미만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박상학 대표는 이날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단 설 연휴 전까지는 대북전단을 살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설까지 남측의 대화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인터뷰 영화 DVD를 대량 살포하겠다”고 호언했다. 일개 탈북자단체 대표가 남북관계를 좌지우지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정부가‘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탈북자단체의 무분별한 행동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지만, 스스로가 설정한 원칙 속에서도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의정부지법은 지난 7일 “대북전단 살포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는 것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며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제지는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국회도 대북전단과 관련해 정부에 필요한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남북 상호 비방ㆍ중상 중단 합의 이행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일개 탈북자단체가 통일부 당국자로부터 직접 자제 요청을 받고도 통일부 업무보고 당일에 버젓이 전단을 뿌린 뒤 다시 공문을 요청한 건 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를 상대하려 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단살포 문제는 법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박근혜정부 스스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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