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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26일의 서촌 마을

입력
2016.1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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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사거리에서 청운효자동주민센터를 지나 자하문터널에 이르는 동네를 흔히 서촌이라 부른다. 원래는 덕수궁이 있는 정동 일대를 서촌이라 했고 지금의 서촌은 웃대 또는 상대로 불렀다. 청와대와 가깝다 보니 요즘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 특히 서울에서만 150만명이 모인 26일 집회 때는 왕복 4차로의 서촌 도로가 폐쇄되고 그 길을 사람이 메웠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청와대까지 들리라는 듯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 이곳 주민센터 앞에서는 전에도 가끔 집회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특히 2014년 5월 9일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희생자가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고 했을 때 세월호 유족들이 대통령을 만나게 해 달라며 눈물을 흘리며 농성한 적이 있다. 당시 주민들은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으며 일부는 유족을 따라 눈물을 흘렸다. 26일 집회에는 옥인동 신교동 누상동 누하동 창성동 통인동 등의 인근 주민이 많이 나왔으며 조금 떨어진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구기동 등의 주민들도 적지 않게 참가했다.

▦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얼굴만 알거나 눈인사 정도만 하던 주민들이 반갑게 악수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남성은 “멀리서 온 사람도 많은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 이웃 주민마저 박근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듯했다. 가게들도 정성을 쏟았다. 한 카페는 커피 4,000잔을 무료 제공했으며 다른 카페는 컵라면과 핫팩을 준비했다. 음식값을 할인한 식당도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은 걸어서 귀가해야 하는 사람들을 승용차에 태워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쉼 없이 데려다 주었다.

▦ 물론 음식점이나 카페는 찾아오는 손님에서 큰 차이가 났다. 어떤 가게는 촛불집회로 손님이 줄었다고 했지만 또 다른 가게는 손님이 밀려들어 정신이 없다고 했다. 한 가게의 주인은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준비한 음식 재료가 다 떨어져 찾아온 손님을 다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렇듯 가게에 따라 희비가 갈렸지만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한 종업원은 “손님들 때문에 가게를 비울 수는 없다”면서도 “옆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도 촛불을 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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