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장에서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려 부정행위자로 적발된 한 수험생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대신 커뮤니티를 통해 동료 수험생들에게 사과를 해 화제다.
17일 부산 남산고에서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A씨는 1교시 언어영역 시험 시간 도중 도시락 가방에 실수로 들어간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리는 바람에 부정행위자로 간주돼 1교시 시험 종료 후 귀가 조치됐다.
A씨는 시험 당일 오후 ‘수만휘’(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라는 이름의 네이버 카페에 ‘오늘 부정행위로 걸린 재수생인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엄마가 도시락 가방 주시길래 그대로 받아서 시험 치러 갔는데 국어 끝날 때쯤 벨소리가 울려서 국어만 치고 집에 왔다”며 “저랑 같은 시험실에서 치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제일 약하다고 생각했던 국어가 94점이라서 너무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A씨는 본보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피해만 준 사람이라 별도의 인터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A씨는 “1교시 끝날 때쯤 벨소리가 10초 정도 울렸는데, 10초면 보기 한 개는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고, “솔직히 1년 동안 하고 싶은 거 다 참고 열심히 준비한 거라 많이 아쉽기도 한데 어제 일은 그냥 빨리 잊고 싶어서 털어내려는 뜻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대를 목표로 내년 수능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꼭 가라는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해당 카페 게시물은 18일 오후 2시 현재 283개의 공감을 얻었으며, ‘수고하셨다’ ‘안타깝다’ ‘응원한다’는 등 댓글 445개가 달렸다. A씨는 “어머니와 불화가 있을까 봐 걱정된다”는 댓글에 “솔직히 처음엔 화냈는데 생각해보니까 엄마 잘못도 아니고 실수니까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해당 게시물을 갈무리한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억울한 마음 대신 동료 수험생들을 걱정하고 사과한 마음이 훌륭하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산하’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김형민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삶을 위해 아금바금 노력해 왔으나 본의 아니게 수렁에 빠져 버린 수험생.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이 수렁에 떨어지는 소리에 놀랐을 다른 수험생을 걱정하던 고운 마음엔 여지없고 예외 없는 ‘원칙’에 의해 탈락의 낙인이 찍혔다”며 “그 수험생의 맑은 눈에 가 가 가 투성이의 장시호가 연세대학교에 떡하니 입학했다는 뉴스가 어떻게 보일까. 과연 우리 사회는 저 수험생에게 원칙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인가”라고 적었다. 김 PD의 글은 5,500여개의 공감을 얻었으며 640여회 공유될 정도로 SNS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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