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노랑 분홍 보라… 색깔이 너무 알록달록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무슨 판타지 게임 같다.” 한정현(15)
“콘크리트 위에 심은 나무가 조감도처럼 풍성하게 자랄 것 같지 않은데...” 이종석(67)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의 홍보용 이미지가 실제와 크게 달라 이를 믿고 서울로를 찾은 시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홍보 이미지 속에서 서울로는 다채로운 색상의 꽃과 나무가 무성하게 표현돼 있지만 실제 모습은 삭막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작고 빈약한 나무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화사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서울로 홍보 이미지는 실제 촬영된 사진 위에 그래픽을 정교하게 합성해 만든 가상의 풍경이다.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보기 좋게 꾸미다 보니 계절감도 철저히 무시돼 있다. 전체적인 배경은 단풍이 엷게 물든 가을이지만 서울로 위에선 개화시기가 제 각각인 각종 꽃나무가 일제히 만개해 있다. 수목의 생육상태도 현실보다 크고 풍성한데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그림자까지 넉넉해 보인다. 이미지만 봐서는 군데군데 햇볕을 피할 그늘도 충분하고 아름다운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 것으로 오인할 소지가 크다.
오승환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는 “실사와 그래픽, 현실과 가상의 무리한 조합이 인간이 가지고 있던 수목에 대한 색감이나 계절 관념 등을 파괴한다. 걷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부조화가 결과적으로 서울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로 홍보용 전경 이미지는 가로판매대와 공사장 가림막, 전철역사 등 서울시내 570곳에 게시돼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다양한 종류의 비현실적인 홍보 이미지가 넘친다. 그러나 어디에도 ‘가상의 이미지이므로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서울역 고가의 새로운 탄생, 서울로 7017’ 같은 홍보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어 착각과 오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홍보 이미지에 끌려 서울로를 찾았다가 실망한 나머지 발길을 돌리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8일 오후 서울로에서 만난 이은미(44)씨는 “홍보 이미지를 봤을 땐 기대가 컸는데 실제로 와보니 실망스럽다. 뙤약볕을 피할 곳도 마땅찮아서 돌아가려는 참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계절을 한 장면에 몰아넣기 보다 계절별 특성을 살린 이미지로 나누어 홍보하면 매력적일 것 같다(이재성ㆍ22)“거나 “개장도 했으니 촌스럽고 인위적인 이미지 대신 실제 촬영한 자연스런 사진으로 홍보하면 어떨까(이보미ㆍ30)”라는 의견을 제시한 시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홍보 이미지가 심하게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로 홍보 관계자는 13일 “개장 이전에 제작을 완료해야 했으므로 그래픽 작업은 불가피했다. 또한, 개장 한 달도 채 안 된 터라 나무가 빈약해 보일 수 있지만 2년~3년 정도 지나면 조감도에 나온 대로 풍성하고 예뻐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홍보 이미지를 솔직한 실제 사진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기존에 게시한 홍보물을 당장 교체하는 것은 예산 등의 문제가 있어 불가능하다. 다만 새로운 안내용 이미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운영해 나가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절의 시차를 무시한 가상의 풍경이 어떻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만에 하나 서울시의 예상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짧지 않은 기간 실제와 허상 사이에서 시민들이 겪을 혼란과 실망감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단조로운 현실을 다양한 색으로 포장한 것 자체가 이번 프로젝트의 획일성을 감추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 도시의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화려한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서울로를 걸어본 시민들의 경험에 의해 평가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권도현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