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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추송웅과 '빨간 피터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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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추송웅과 '빨간 피터의 고백'

입력
2011.08.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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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너무 자주 자유를 착각합니다.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하듯이 착각 또한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하는 것이지요… 저는 오로지 보고만 할 뿐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잡혀와 인간의 길을 택해 서커스 스타가 된 빨간 원숭이 피터는 과거 원숭이 시절의 삶에 대해 보고해달라는 학술원의 요청을 받고 진정한 자유와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프란츠 카프카 원작 를 각색한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이 1977년 8월 20일 서울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1985년 작고한 연극배우 추송웅이 제작, 기획, 장치, 연출, 연기까지 1인 5역을 맡은 이 연극은 전례 없는 흥행기록을 세우며 한국 연극계에 모노드라마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30평도 못 되는 창고극장 지하 무대. 일순의 정적과 함께 구둣발 소리가 들려온다. 조명이 비치며 프록코트를 차려입은 괴상한 모습의 원숭이가 나타나고…. 이후 한 시간 동안 빨간 원숭이로 분한 추송웅은 독특한 몸짓과 화술로 무대를 장악한다. 철창에 갇혔다가 사다리와 그네를 오르내리며 때론 익살스럽고 때론 세상을 조롱해가며 숨쉴 틈 없이 관객을 몰아쳤다. 한여름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매회 2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와 박수를 보냈고, 공연은 8년 동안 이어졌다.

1985년 겨울, 누구보다 바쁜 삶을 이어가던 추송웅은 일본 공연을 앞두고 감기 기운이 있다며 병원으로 향한 후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급성 패혈증 진단을 받고 수술실로 들어가 영영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빨간 피터' 추송웅은 4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은 무대에서 이어지고 있다. 배우 주호성 장두이 등 수많은 연극인들이 '빨간 피터의 고백'을 재해석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고, 그의 아들딸 상록과 상미도 감독과 배우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축 처진 듯한 어깨를 가진 슬픈 원숭이가 태어났던 삼일로창고극장은 재정난으로 폐관 위기에 몰렸다가 지난 10일 태광그룹의 도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반가운 소식이다. 재개관을 기념해 신세대의 결혼관을 풍자한 뮤지컬 '결혼'이 9월까지 공연된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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