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자 66% ‘엄격한 낙태금지’ 수정헌법 폐지 찬성
정부 입법안 제출…임신 12주 이내 낙태 허용할 듯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헌법조항을 폐지하기로 했다.
아일랜드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놓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66.4%, 반대표가 33.6%로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투표율은 64.1%였다.
국민투표 안건은 예외가 거의 없는 낙태금지를 규정한 1983년 수정 헌법 제8조의 폐지 여부였다. 엄격하게 규정한 낙태 금지 헌법 조항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이 조항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존권을 부여하고 있다. 낙태를 할 경우엔 최대 14년 형의 중형을 선고하는 처벌 조항까지 뒀다. 지난 2013년에는 낙태 완전 금지에서 벗어나 임신부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기로 완화했지만, 1983년 수정헌법 발효 이후 약 17만 명의 임신부가 영국 등에서 ‘원정 낙태’를 한 것으로 집계될 정도로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총리 선출 당시 낙태 찬반 국민투표 실시를 약속했던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는 투표 결과가 사실상 낙태 허용 찬성 쪽으로 기울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며 “민주주의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권리행사”라고 밝혔다. 그는 낙태 금지 헌법 조항 폐기에 찬성 입장을 보여 왔다.
인도인 부친과 아일랜드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의사 출신의 바라드카르 총리는 2015년 아일랜드의 동성 결혼 합법화 국민투표를 앞두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다.
2015년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아일랜드는 이번 낙태금지법 폐지로 사회적으로는 물론 여성 권리와 관련해 큰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하원에 입법안을 제출, 연내까지 법안처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입법안은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에는 태아 기형이나 임신부에 건강 또는 삶에 중대한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중절 수술을 시행하기 전 사흘간의 시간을 두고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의료진의 개인적 신념 등과 배치될 경우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맡길 수 있다.
이번 국민투표로 아일랜드는 임신 12주 이내의 경우 본인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대부분의 유럽국가에 동참하게 됐다. 아이슬란드는 임신 16주까지, 스웨덴은 18주까지, 네덜란드는 22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의사 두 명의 동의 아래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24주 이후에는 역시 산모 건강, 심각한 기형 등의 예외사유만 인정한다.
엄격하게 금지하는 국가도 여럿이다. 유럽국가 중 몰타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며,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아일랜드 공화국도 마찬가지다. 폴란드와 키프로스에서는 산모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 태아 기형, 성폭행, 근친상간 등에 한해서만 중절 수술이 가능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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