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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기업들의 피해자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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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기업들의 피해자 코스프레

입력
2016.11.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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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문화 중에 코스프레가 있다. 일본에서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라는 영어를 줄여서 만든 말로, 일종의 복장 놀이다. 영화나 만화, 게임 속 등장인물의 옷차림을 그대로 따라 하며 즐기는 놀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총수들이 검찰조사를 받은 대기업들을 보면 코스프레가 떠오른다.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등에 774억원이라는 거액을 내놓은 기업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당한 희생자인양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들이 사업을 하려면 정부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각종 규제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들은 정부가 벌이는 각종 사업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여한다. 이를 대기업들이 ‘준조세’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대기업들이 일방적인 피해자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대기업들은 과거 군사 정권시절처럼 강제로 뜯긴 경우가 아니라면 준조세를 내놓으며 반대 급부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연일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도 이런 대가에 대한 의혹 때문이다. 삼성은 정유라씨의 말 구입비 등으로 2015년 최순실씨가 독일에 세운 코레스포츠의 독일 은행 계좌로 280만유로(당시 환율로 35억원)를 송금했다. 세간에서는 삼성의 이 같은 지원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당시 삼성은 주주 이익 침해를 이유로 합병에 반대한 미국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았는데 국민연금이 삼성을 지원하며 합병에 성공했다. 물론 삼성 측에서는 이를 정유라씨 지원과 무관한 만큼 대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SK는 K스포츠재단에서 80억원을 요청받았으나 30억원으로 깎았다가 CJ헬로비전 인수가 무산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K스포츠재단 기금과 CJ헬로비전 인수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늦장 심사 끝에 합병을 반대한 석연치 않은 정황이 이런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런 정황만 놓고 보면 결국 대기업들의 준조세 성격의 참여를 일방적인 희생이라고 보기 힘들다. 무엇인가 대가를 기대한 참여라면 반강제적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희생이라기 보다 공범에 가깝다.

대기업들은 형평성 문제에서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재벌 기업들은 미르 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수십억원씩 돈을 내놓으면서도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고용이나 투자 확대를 회피하는 등 노동자나 소비자를 위한 노력에 인색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거꾸로 구조조정으로 사람들을 자르기 바빴고 각종 원자재가 인하에도 불구하고 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것을 게을리 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대기업들은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등 비선 실세들을 지원한 셈이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이 공범이 아닌 희생자를 운운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대기업들이 국민을 배신한 행위에 대해 조금이라도 사죄할 뜻이 있다면 모든 정황을 속속들이 밝히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신뢰를 얻어 영속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대기업들은 정권과 비선 실세들에게 바친 뭉칫돈 이상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상생을 위한 투자도 확대하며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공범으로 참여한 대기업들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이다. 최연진 디지털뉴스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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