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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김] 요리, 가족을 지키는 ‘소박한 위로’

입력
2015.08.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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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상대자의 직업에 따라 기대하는 요소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개그맨과 결혼하면 평생 나를 웃겨줄 것이다’랄지 ‘선생님과 결혼하면 아이들 사교육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라는 류의 기대 말이다. 요리사도 이런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결혼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집에서도 요리를 하는가?’인 걸 보면 말이다.

실제로 집에서 절대로 요리를 하지 않는 요리사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십분 이해가 간다. 일주일에 6일 이상을 꼬박 주방에서 요리하다 보면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고 싶지 않을 법하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엔 불 앞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숨이 막힐 때가 있다.

하지만 난 다르다. 결혼 전에도 휴일에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손수 요리를 했고, 결혼 후엔 가끔 아침을 차려 아내의 침대 위로 가져다 준다. 뭇 요리사들과 달리 내가 집에서도 요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을 위한 요리라고 해서 반드시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계란 프라이에 사랑만 담아도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을 위한 요리라고 해서 반드시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계란 프라이에 사랑만 담아도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어린 요리사 시절 모시고 일하던 셰프가 가르쳐주신 게 있다. 자신은 40년을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아내에게 이혼하자거나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매일 아침 달걀 몇 개로 아주 쉬운 스크램블이라도 만들어 식사를 차려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리사가 요리 말고 알아둬야 할 정말 중요한 팁이라고 귀띔했다. 당시엔 그게 뭐 대수려니 했지만, 지금은 격하게 공감한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본의 아니게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마련이다. 남들이 노는 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찾으면, 요리사는 주방에서 열심히 굽고 볶고 삶고 튀긴다. 많은 사람들이 쉬는 날이 더 바쁜 게 요리사의 숙명이다. 크리스마스, 밸런타인 데이,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첫 날 등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이 요리사에겐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할 날이다.

미국에서 실시한 어떤 조사에 따르면 요리사는 이혼율이 높은 직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상대적으로 박봉인데다가 쉬는 날이 일정치 않고, 근로기준법에 상관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성공할 수 있는 직업임을 알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족이 느낄 상실감과 공허함을 달래주기 위해선 평소에 잘 해야 한다. 그게 어릴 적 모셨던 셰프의 조언이기도 하다.

나는 특별한 날 함께한 추억 대신 내가 만들어 준 요리로 추억을 쌓으려 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양가 부모님들의 몸보신을 위해 염소고기로 탕을 해 드린다. 친한 친구들이나 형제들은 가끔 집으로 모셔서 음식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딸 아이가 커서 어떤 음식이든 잘 먹는 나이가 되면 토요일 아침은 꼭 내가 직접 해주리라 다짐했다. 가장 소중한 아내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라도 편하게 침대에서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차려준다.

요즘은 TV만 켜면 '쿡방'이 넘쳐나는 시대다. 실제로 따라해보면 어렵지도 않다. 오늘은 아니 이번 주말에는 가족을 위해 칼칼한 된장찌개라도 끓여보면 어떨까?
요즘은 TV만 켜면 '쿡방'이 넘쳐나는 시대다. 실제로 따라해보면 어렵지도 않다. 오늘은 아니 이번 주말에는 가족을 위해 칼칼한 된장찌개라도 끓여보면 어떨까?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게 있을 테고, 그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건 가정이고, 난 요리를 통해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다. 가장 오랫동안 공들여 배우고, 가장 잘 하는 요리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며 살고 있으니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식당에선 단가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재료들 - 이를테면 일본산 고베 소고기, 프랑스산 거위간과 트러플(세계 3대 식재료 중 하나로 우리말로는 송로버섯에 해당한다. 인공 재배가 불가능하며 땅 속에서 자라 채취도 어려워, 유럽에선 ‘땅 속의 다이아몬드’라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 등 - 을 맘껏 써가며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가게의 주방 뿐만 아니라 집 주방에서도 앞치마를 두를 이유는 충분하다.

요리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건 강력하게 추천할 만하다. 요리만큼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꼭 화려하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달걀로 스크렘블을 만들고 식빵을 구워 아침을 만들어도 좋고, 두부을 썰어 넣어 칼칼하게 끓인 된장찌개는 저녁에 제 격이다. 먹방이 대세인 요즘엔 쉽게 따라 할만한 레시피도 차고 넘치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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