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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벅차게 하는 건 노벨상이 아닌 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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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벅차게 하는 건 노벨상이 아닌 독자입니다”

입력
2016.10.2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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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英 식민지 치하 민중 슬픔 담아

독립 후엔 독재 정부 부패 고발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거론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케냐 출신 소설가이자 탈식민 이론가 응구기 와 시옹오(78)가 한국을 방문했다. 2005년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초청됐던 그가 이번엔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1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다.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부인 줴에리 여사와 함께 자리한 응구기는 “작가가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요청하지 않은 상을 받는 일만큼 기쁜 일도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작가는 영국 식민지 치하의 케냐에서 태어나 케냐 민중이 일으킨 마우마우 독립운동을 직접 목격한 세대다. 초기 작품 ‘울지마 아이야’(1964, 은행나무 발행) 등에서 억눌린 식민지 민중의 슬픔을 녹여내던 그는 대표작인 ‘한 톨의 밀알’(1967, 은행나무 발행)과 ‘피의 꽃잎들’(1977, 민음사 발행)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정신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언어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믿은 그는 이후 세례명인 제임스 응구기란 이름을 버리고 응구기 와 시옹오로 돌아와 영어 대신 자신의 부족인 기쿠유족의 언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80년 발표한 ‘십자가 위의 악마’(창비 발행)는 그가 케냐 독립 이후 세워진 독재 정부의 부패상을 기쿠유어로 고발한 첫 소설로, 김지하의 시 ‘오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이 ‘오적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사르트르 등과 함께 구명 운동에 동참했던 응구기는 영어로 번역된 ‘오적’을 접했고 1977년 독재 정권에 의해 감옥에 갇혔을 때 휴지 위에 몰래 이 소설을 써 내려갔다.

작가는 이날 “김지하 선생의 작품을 통해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깊게 고민하게 됐다”며 “아무리 작은 언어, 심지어 다섯 명 만이 구사하는 언어라도 그 언어로 작품을 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영어가 아닌 기쿠유어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나는 ‘소수 언어를 위한 전사’가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김지하 시인이 박경리 작가의 사위라는 사실도 기묘한 인연이다. 응구기는 “김지하 선생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의 정신적인 친구였다”며 “과거의 기억 하나하나가 이 상과 관련이 있어 내겐 여러모로 노벨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각별한 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인터넷을 통해 박경리 소설 ‘토지’에 대해 정보를 검색했다는 작가는 “‘토지’를 보며 한국과 고국 케냐 사이의 유사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과거 일본이 한국어를 억압한 것처럼 영국도 케냐어를 억압했다. 모든 언어는 상호평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야지 힘에 의해 타자의 언어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응구기는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다. 올해도 영국의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1, 2위를 다퉜지만 미국 가수 밥 딜런이 깜짝 수상을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이에 대해 작가는 “수년 전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날이면 기자들이 집 앞에 찾아온다”며 “수상 여부와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고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딜런 수상에 대해서는 “문학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며 “그는 오랫동안 훌륭한 음악가로 활동했으며 그가 수상한 것은 단순히 대중가수여서가 아니라 그의 활동 뒤에 많은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1982년 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풀려난 응구기는 케냐 정부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 현재 뉴욕대 비교문학과 공연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는 22일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한 뒤 25일 연세대에서 ‘케냐와 한국의 문학적 연대’라는 내용으로 강연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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