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래미안팰리스 1, 2단지
‘대치청실’ 마을 꾸려오다 재개발
수영장 등 주요시설 1단지 몰려
이용권 갈등 끝 진흙탕 소송전
남남이란 판결에 회계ㆍ관리 분리
“오랜 공동체 깨지다니” 허탈감
“완전히 남남입니다. 1단지 놀이터에 2단지 아이들이 놀러 가면 나가라고 성화네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래미안팰리스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1ㆍ2단지를 가로지르는 울타리 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쪽문은 주민 카드가 있어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3개월 전만 해도 자유롭게 오가던 두 단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0년 이웃들이 서로 등을 돌렸다. 주민편의시설 사용권을 놓고 불거진 양측의 다툼은 급기야 소송으로 번졌고 이제는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은 두 단지가 별개 아파트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단이 나오자마자 주민들은 단지를 분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단지 주민 박모(54ㆍ여)씨는 “1ㆍ2단지가 도로로 나눠져 있긴 하나 법적으로 한 지붕 두 가족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대치래미안팰리스의 원래 이름은 청실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1979년(1단지)과 81년(2단지) 각각 1,278세대, 330세대가 지어졌다. 2015년 9월 재건축이 완료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608세대 중에는 30년 넘게 이웃사촌으로 지낸 이들도 있을 만큼 지금까지 별다른 분란은 없었다. 18년째 2단지에 거주 중인 정모(66)씨는 “뒤에 붙은 동 표시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고 다들 ‘대치청실’이라는 마을에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랬던 주민들이 결별 수순을 밟게 된 건 1단지에 쏠려 있는 호화 주민편의시설 때문이다. 재건축이 완료된 뒤 1단지 측은 시설 사용 권리를 주장하며 2단지 주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당연히 2단지 주민들은 반발했다. 편의시설은 두 단지에 각각 있지만 1단지 규모가 훨씬 크다. 독서실,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사우나, 골프연습장 등 핵심 시설은 모두 1단지가 가져갔다.
시설의 질은 강남에서도 손 꼽히는 수준이다. 200석 규모의 독서실은 예약만 하면 무료 사용이 가능하고, 피트니스센터에는 러닝머신 18대, 싸이클 10대 등 각종 운동기구가 빠짐 없이 구비돼 있다. 골프 연습장에는 부스만 20개에 퍼팅 연습 공간도 따로 있어 마음껏 실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단지 인기는 2단지를 압도한다. 인근 부동산 사장 박모(43ㆍ여)씨는 “아무래도 호화 시설이 몰려 있는 1단지 수요가 더 많고 매매 가격 역시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재건축 당시 별도 합의가 없었던 탓에 2단지 주민들은 공동 사용 권리를, 1단지는 독점 사용권을 주장했다. 2단지 주민들은 시설 사용 요구를 계속 거부당하자 결국 소송 비용을 모아 9월 중순 법원에 시설사용제한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법적 분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했다. 1단지 측은 2단지 주민들이 일조권 보상금을 내지 않은 점을 시설 사용 금지 이유로 댔다. 재건축 과정에서 인근 학교에 지불해야 할 42억5,000만원의 보상금을 1단지가 전부 부담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2단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재건축조합이 시공사에서 돈을 빌려 (보상금을) 냈고 해당 금액은 1ㆍ2단지 주민들이 같이 갚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1단지 손을 들어줬다. 시설이 별도로 조성된 두 단지를 다른 아파트로 보고 2단지 주민들은 상대 시설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민들도 합의를 포기하고 각자 살 길을 택했다. 관리사무소 운영부터 회계까지 전부 따로 하기로 한 것이다. 상처만 남긴 소송 결과에 주민들은 허탈감을 토로한다. 1단지 주민 윤모(29)씨는 “아무리 돈 문제가 끼어 있다 해도 고작 시설을 이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30년 이웃이 서로를 죽기 살기로 물어 뜯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2단지에 살고 있는 박모(42ㆍ여)씨도 “요즘 아파트 치고는 보기 드물게 정을 나누고 살았는데 이웃 공동체가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수익성을 담보로 한 개발 사업의 부작용이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잡음이 끊이지 않은 것은 미래 수익에 골몰해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더 큰 혜택을 보기를 바라는 일종의 ‘핌비(PIMBYㆍPlease In My Backyard)’ 현상 때문”이라며 “특히 가치창출 효과가 큰 강남을 중심으로 집단 이기주의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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