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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년 임금 20만원 뺏는 대기업

입력
2016.1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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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근로자에게 당장 생활을 지탱하는 기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료의 재원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소득 불안정을 예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 적정하게 지급될 경우, 근로자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근로 의욕을 높이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임금을 받을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사회 경제 질서와 노동시장의 선순환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이다. 이 점에서 매년 1조원이 넘는 우리나라의 임금체불 규모는 그 사회 경제 질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징표다.

국정감사 때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밝힌 이랜드의 임금체불 사건은 이러한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을 드러낸 극단적 사례다. 이 사건이 영세 기업이 아니라 굴지의 대기업에 의해 조직적 의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 참혹하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이랜드 그룹 외식업체들은 지난 1년간 연차휴가수당, 휴업수당,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은 물론 근로시간을 15분 단위로 기록하는 ‘임금 꺾기’ 수법으로 4만4,360명으로부터 약 83억원의 임금을 체불했다고 한다. 노동법의 관련 규정을 모를 리 없는 대기업이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임금을 빼돌렸다는 점에서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노동 범죄다.

이랜드의 임금체불이 청년을 대상으로 한 것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청년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때에만 우리 경제의 앞날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고 그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은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것이다. 그 반대의 경험을 한다면, 청년은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채 다른 삶의 방식을 찾을 것이다. 자신의 노동이 착취의 고리가 되고 사업장에서 기본적 권리가 박탈되는 일을 겪은 청년들에게 어떻게 성실하게 일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청년의 임금을 빼돌린 기업은 우리 사회의 건강함과 경제적 기반을 갉아먹는 존재로서 비난받아야 한다.

이랜드 그룹이 비정규 근로자를 자신들의 이윤 추구의 희생양으로 삼은 점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 근로자는 임금체불 등의 노동 범죄에 자주 노출됨에도, 소송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근무 기간이나 근로시간이 짧아 개인별 피해액이 적고(이랜드 그룹의 임금체불 사건 역시 피해자 1인당 평균 체불임금액은 20만원에 불과하다) 생업에 바쁘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이런 상황을 악용하여 비정규 근로자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한다. 비정규 근로자의 취약성을 고려한 적절한 임금체불 구제 수단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임금체불은 자주 사회적 약자에게 일어나고, 그로 인해 가뜩이나 취약한 그들의 생활은 더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지금 법률에 따르면 임금체불이 발각될 때 기업이 부담하는 경제적 의무는 밀린 임금을 돌려주는 정도에 그친다. 이렇게 임금체불이 적발되더라도 제때 임금을 지불하는 것 이상의 부담을 지지 않는 “밑져봐야 본전”인 법률적 조건에서, 일부 기업의 눈에는 노동법 위반의 결정을 할 만한 경제적 유인이 쉽게 드러나곤 한다. 법을 어기면 이익을 얻고 최악의 경우에도 밑지지 않는 상황에서 상인(商人)적 이해타산만을 따지는 기업이라면, 근로자의 임금을 빼돌리고 지급을 미루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방임할 경우 비용 측면에서 노동 범죄 기업이 노동법 준수 기업보다 더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노동법 준수 기업이 시장 경쟁에서 탈락하여 종국적으로는 소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즉 임금체불에 대한 대응은 시장경제 질서에서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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