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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단무지를 다꽝이라고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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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단무지를 다꽝이라고 부르자

입력
2018.06.13 19:4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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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밥, 메밀국수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와사비가 어느 결에 스낵 등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와사비를 찾아보면 ‘고추냉이의 잘못’이라고 나온다. 즉 와사비의 순화어가 고추냉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원산지를 찾아보면, 와사비는 일본이고 고추냉이는 한국이다. 동일한 대상인데 원산지가 다르다고? 실제로 와사비의 학명은 ‘Eutrema japonicum’인 반면, 고추냉이는 ‘Cardamine pseudowasabi’ 즉 ‘황새냉이 속에 포함되는 가짜(pseudo)+와사비(wasabi)’일 뿐이다. 이는 두 식물이 엄연히 다름을 의미한다. ‘일본말에 대한 극복 필연성’과 ‘비대칭 상황에서의 순화어 사용’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이 때문에 요즘은 방송에서도 와사비라는 말을 그대로 노출해서 사용하곤 한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영어나 불어 또는 국적 불명의 외국어가 그대로 노출된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아이돌의 노래나 TV 속 자막에서도 심심찮게 접하는, 이제는 일상화된 풍경이다. 그런데 이를 순화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별반 나타나는 것이 없다. 즉 일제강점기에 대한 수치와 증오로 인해서, 일본어에 대해서는 보다 높은 엄격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꾸앙(다꽝)을 단무지라고 부르는 웃지 못 할 일도 발생한다. 다꾸앙(澤庵, たくあん: 1573∼1645)은 본래 일본 선종(임제종)의 고승이었다. 이 스님이 사찰에서 만들어 먹은 짠지가 후대에 유행하면서, 만든 사람의 이름이 붙게 된 경우이다. 즉 다꾸앙은 스님의 법명을 딴 사찰음식인 셈이다.

사실 명칭에 발견자나 발명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다꾸앙을 단무지라고 순화한 것은 명백한 오버임에 틀림없다. 즉 김치가 일본에서 기무치로 불리듯, 다꾸앙은 그냥 다꽝이 돼야 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일본어로 오인되는 발음 때문에 사라진 말도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딱지나 구슬치기를 하면 ‘도리한다’, ‘도리친다’는 말을 사용하곤 했다. ‘전부’나 ‘싹쓸이’라는 정도로 사용되던 말이었다.

도리는 일본어로는 새를 뜻한다. 그래서 고스톱에서 고도리는 ‘숫자 5를 뜻하는 고(五)’와 ‘새를 뜻하는 도리(鳥)’의 결합으로 5마리의 새라는 의미가 된다. 매조의 1마리와 흑싸리의 1마리 그리고 공산의 3마리해서, 도합 5마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어떻게 새가 전부나 싹쓸이라는 의미가 되는 걸까? 사실 ‘도리한다’의 도리는 일본어의 ‘도리=새’가 아니라, 불교에서 천당을 가리키는 표현인 도리천(忉利天)의 도리이다.

올림포스산에 제우스를 필두로 하는 12신이 사는 것처럼, 인도 신화에서는 수미산의 꼭대기인 도리천에 제석천을 리더로 하는 33의 신들이 산다. 이 33의 인도 말이 도리이며, 여기에는 신들의 전체 즉 전부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이것이 불교를 타고 우리나라까지 전파되어 사용된 것이다. 이런 연원이 오랜 말이 최근 일본말 도리에 걸려 사라진 셈이다.

우리는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무력에 의한 강제점령은 전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존재하지 않았던 초유의 사건이었다. 그만큼 충격과 여운이 강한 치욕인 셈이다. 또 얼마나 싫었으면 8월 15일을 ‘빛을 회복했다는 의미’로 광복절(光復節)이라고 했겠는가! 즉 일제강점기는 빛이 없었던 암흑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호들갑스럽게 병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 민족은 훨씬 강력하고 위대하다. 세계로 뻗어나갈 대한민국의 기상에 일본 따위를 의식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과도한 의식이 도리어 병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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