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인근서 4차 핵실험
中에도 사전 통보 않고 강행
美ㆍ中 동시 겨냥한 기습 도발
정부는 증폭핵분열탄 판단
연초부터 한반도 정세 급랭
북한이 6일 사전 예고나 통보도 없이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2013년 2월 이후 3년여 만에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수소(폭)탄 시험 성공’이라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수소폭탄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 실험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 핵실험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북한 내부 장악력을 높이고, 대미ㆍ대남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로 보이나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세 2016년 연초부터 한반도 정세에 일대 파란이 일 전망이다.
북한 6.0kt톤급 핵실험 “수소탄 실험” 주장
북한은 이날 정부 성명을 통해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결심에 따라 6일 10시(한국 시간 10시 30분) 주체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성명에서 “이번 시험을 통해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증했고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했다”며 “이번 수소탄 시험은 우리 핵무력 발전의 보다 높은 단계”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어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보유국의 전열에 당당히 올라서게 됐다”며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핵 개발 중단이니 핵 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수소탄 시험 진행을 명령한 사실과 지난 3일 노동당 군수공업부가 작성한 수소탄 실험 최종명령서에 사인한 내용도 공개했다.
앞서 기상청과 지질자원연구원 등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북한 함북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진도 4.8 규모의 인공지진파를 감지하고 청와대 등에 급보했다. 지진 발생 지점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장소에서 약 1.2㎞떨어진 길주군 풍계리의 북위 41.30도, 동경 129.09도 지점이다. 규모도 3차 핵실험(4.9) 당시와 거의 비슷하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 미국지질조사국(USGS), 중국지진센터 등도 4.8~5.0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했다고 발표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핵실험 위력은 6.0kt(킬로톤ㆍ1kt은 TNT 1,000톤의 폭발력) 규모로 위력이 수십 수백 킬로톤 규모여야 하는 수소폭탄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풍계리 실험장 등의 핵실험 준비 징후를 사전에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대북 정보 실패 책임론도 제기될 전망이다.
예고도 없는 전격 핵실험으로 한미중 뒤통수
북한의 4차 핵실험은 과거 1~3차 때와 달리 사전 예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의도가 더 주목 받고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최소 30분 전에는 중국 미국 등에 실험을 사전 통보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통보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10일 김정은 위원장이 평천 사적지 방문에서 수소탄을 언급하긴 했으나 1~3차 때와 달리 핵실험을 실시하겠다는 사전 입장 공표도 하지 않았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1월 1일 북한 신년사에서 2015년 신년사와 달리 경제ㆍ핵 병진노선이나 핵 억제력 강화 같은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했던 기조와도 배치된다. 당시 신년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등을 앞두고 국제사회를 자극할 핵실험 등은 하지 않겠다는 언급으로 해석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말 남북 당국회담 결렬, 모란봉악단 철수(12월 12일) 직후 수소탄 실험 준비를 결정하는 등 한국 중국 미국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준비를 치밀히 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4차 핵실험 깜짝 강행으로 자신들의 핵보유국 주장을 국제사회에 더 효과적으로 각인시키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핵무기를 탑재해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을 지난해 말 실시한 사실이 이날 핵실험 직전 공개된 대목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지난해 9월부터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촉구해왔으나 미국의 무시로 무산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4차 핵실험으로 핵능력 고도화를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렸다는 분석이다.
5월로 예정된 36년 만의 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주민들에게 북한의 군사 능력을 선전 과시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며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1월 8일 김정은 생일 전 축포 성격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핵전략을 명확히 해 5월 당대회 이전에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라며 “미국 대선구도가 본격화하기 전 미국과 담판하겠다는 뜻도 담겼다”라고 분석했다.
국제사회 제재로 한반도 정세는 먹구름
이번 핵실험으로 한반도 정세는 조금 더 위태로워졌다. 유엔이 7일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 제재 조치는 자동 강화할 전망이다. 2013년에 이어 중국을 또다시 무시한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북중관계도 냉랭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정부 차원의 제재 조치가 취해지고, 2월 한미 연례 군사훈련을 전후해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이 이어진다면 군사적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당분간 한반도 주변 정세는 얼어붙고 회복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이제 북쪽이 회담하러 나온다 해도 곧이 들을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정상원기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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