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은 그나마 품위는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6월 “통일은 도둑 같이 올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오는 것이 아니고 뜻밖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북한 붕괴론’의 본질을 그래도 근사하게 표현한 말로 남을 듯싶다.
“도둑 같이 온다”는 문구는 사도 바울이 여러 편지에서 남긴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온다”고 한 저 유명한 종말론적 예언에서 따온 게 분명할 터다. 그 당시 북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대국 로마에게 핍박 받던 유대 민족에게 ‘로마 붕괴’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심판과 해방의 날’이 한밤의 도둑처럼 느닷없이 닥쳐 올 것이기에 인내하면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신자들을 독려했다. 억압과 모순, 불확실로 가득한 현실을 ‘믿음’으로써 버티게 한 말이다.
이를 빗댄 “통일은 도둑 같이 온다”는 문구 역시 분단 현실의 불확실성을 믿음으로써 버티며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인 셈이다. ‘북한 붕괴론’이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임을 이 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 용어는 이보다 훨씬 저렴했다. 2014년 1월 신년연설에서 뜬금 없이 나왔던“통일은 대박이다”는 발언이 그렇다. ‘도둑 같이 온다’는 말이 ‘항상 깨어 있으라’는 신앙인의 각성을 주문하는 데 비해 ‘통일 대박’은 횡재를 기원하는 기복 신앙의 색채가 짙었다.
아울러 이 전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은 ‘기다림의 전략’으로 온건했다면, 박 대통령의 경우 붕괴 목표 시한을 설정한 듯 급박하고 공격적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5ㆍ24 제재 조치로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를 금지하긴 했지만, 개성 공단을 유지하고 북한과 비밀 접촉도 가지며 북한의 의사를 꾸준히 타진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도 인내하고 참았다. ‘도둑처럼 온다’는 말이 신앙인의 인내를 요구하듯, 대북 정책도 그의 종교적 신념을 체화한 셈이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기다렸다는 듯,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인도주의적 지원도 끊었다. 대화의 ‘대’자로 꺼내지 못하게 했다. 차마 다행이었던 것은 북한이 국지전적 도발은 하지 않았던 점이다. 박 대통령이라면 곧바로 전면전을 불사하고 반격을 감행할 태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은 그러니까 언어적으로는 저렴했고, 내용적으로는 과격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기준 하나가 ‘종말 시기’다. 정통 신앙은 예수 재림의 시기를 확정하지 않는다. 도둑 같이 오는 그 시간을 인간은 알 수 없다. 반면 사이비 혹은 이단 신앙은 종말 시기를 구체적으로 예언한다. 비유하자면, 붕괴론에서 이 대통령이 정통 신앙이라면, 박 대통령은 붕괴 시기를 설정한 이단은 아닐까. 그러니까 “2017년에 통일이 온다”는 예언에 기댔던 붕괴론이라면 이 차이의 이유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비유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는 술자리 농담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이후 가장 많이 들리는 얘기가 “퍼즐이 맞춰졌다”다. 그간의 여러 의문점이 최씨의 존재로 그럴 듯하게 설명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통일 대박 발언이나 북한 붕괴론이 최씨에게서 나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씨의 종교나 박 대통령의 종교 역시 여전히 물음표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기반이‘북한 붕괴론’이며, 이는 여러 대북 전문가들이 지적해왔듯이 객관적 현실이 아닌 주관적 사고틀이다.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가까운 붕괴론에 매달린 박 대통령에게 주술적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박 대통령이 행여 붕괴론을 버리지 못하고 정국 반전의 카드로 선제 타격을 구상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송용창기자 정치부 차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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