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록 : 2017.04.20 13:24
수정 : 2017.04.20 13:24

[우리말 톺아보기] 비혼(非婚)

등록 : 2017.04.20 13:24
수정 : 2017.04.20 13:24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결혼을 생각 중이지만 아직 하지 않은 미혼자로 묶어 버리는 건 잘못된 거예요.”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부터 이처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그리고 접두사 ‘미(未)-’의 의미를 민감하게 의식하면서 ‘미혼’에 대응하는 새말인 ‘비혼’이 만들어졌다.

‘미-’에는 ‘아직 되지 않은’의 뜻이, ‘비-’에는 ‘아님’의 뜻이 있다. 이 차이를 되새겨 보면 이 접두사가 포함된 말을 새롭게 의식하게 된다. ‘비정규직’도 그런 말 중 하나다. 정규직이 되는 게 꿈인 세상에서 ‘정규직이 아님’의 뜻을 나타내는 ‘비정규직’이 ‘고용’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미혼’에 대응해 ‘비혼’을 만든 논리라면, 어쩌면 ‘비정규직’에 대응해 ‘미정규직’이란 말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이라는 말만으로도 정규직을 꿈꾸는 고용 현실을 나타내는 걸 보면, ‘비혼’이란 새말을 만든 것이 ‘미-’와 ‘비-’를 구분해야 하는 언어적 필요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혼’이란 말을 만든 것은 사람을 ‘미혼’과 ‘기혼’으로 나누는 틀을 깨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결혼이란 틀로 사람을 보는 게 문제의 핵심이란 말이다.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음’의 뜻인 ‘결혼’에는 ‘이룬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혼’의 뜻이 이러니 ‘미성년, 미완성, 미해결’이 자연스럽듯 ‘미혼’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그렇다면 ‘비혼’을 만든 의도를 제대로 살리려면 접두사 ‘비-’와 ‘미-’의 차이에 주목할 게 아니라 어근 ‘(결)혼’을 벗어나는 말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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