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곡가 마크앤서니 터니지의 오페라 ‘그리스인’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폐막공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2~4일 3회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폐막공연이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협연으로 음악제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지만 아시아초연에다 다소 낯선 성악가들이 출연한 ‘그리스인’의 인기는 다소 이례적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198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작곡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의 출세작. 소규모 신작 오페라를 제작하는 영국 웨일스 뮤직 시어터 프로덕션이 제작하고, 마이클 매카시가 연출을 맡았다.
1988년 발표 당시 새로운 오페라 양식으로 각광받은 이 작품은 당시 영국의 정치 현실을 비틀어 30년 가까이 재공연될 만큼 영국에서는 ‘믿고 보는’ 작품이 됐다. 그러나 영국의 무대세트를 그대로 옮겨 재현한 이번 공연은 현대음악만큼이나 관객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열린 4일 마지막 공연에는 이전 본 공연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렉처 콘서트’(작품설명을 곁들인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열혈 관객이 있는가 하면 1부 후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도 있었다.
무대는 소규모 뮤지컬을 떠올리게 한다. 무대 아래에 숨어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무대 한가운데서 관객을 맞는다. 전통적인 클래식 악기 외에 드럼과 색소폰 등이 더해졌고 배우들은 오케스트라를 배경 삼아 그 앞에서 연기를 하고 객석을 뛰어다닌다. 육성으로 극장이 울리도록 노래를 부르던 배우들은 이 작품에서 때때로 마이크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귀에 꽂히는 아리아나 드라마틱한 무대전환은 없다.
출연 배우는 단 4명. 현대의 오이디푸스로 변한 ‘에디’역의 에드워드 그린트를 제외하고 모두 1인 다역을 소화한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시비가 붙어 에디에게 맞아 죽는 카페주인으로, 왕비 이오카스테는 과부가 된 카페 여주인으로 변했다. 테베의 역병 창궐은 1970~80년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경제정책과 광산 파업사태로 바뀐다. 수많은 전투병력이 움직이는 장면은 배우들이 군화를 손에 끼고 움직여 소리를 내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 도중 방패를 두들기는 것으로 표현했다.
점점 관객층이 얇아지는 클래식 시장에서 소규모 오페라 공연을 제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80년대 영국 정치현실과 그리스 고전과 버무린 서사는 영국인이라면 충분히 감정이입을 할 만하다. 하지만 스펙터클한 대형 무대에 익숙한 국내 관객은 이 작품을 선호할지 의문이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배우들의 창법 역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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