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통합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강조하는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적폐를 확실히 청산하면서 민주주의 틀 안에서 소수 의견도 존중하고 포용하는 ‘원칙 있는 통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안희정 충남지사는 적폐 청산보다 대연정과 화합에 더 방점을 둔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정치인은 광장의 한 쪽에 서는 게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 문제를 풀고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보수층 껴안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 대선주자들의 이런 주장에는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통합되는 게 옳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 국론(國論)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 안의 공통된 의견’. 하지만 다양성이 생명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론은 실현 불가능한 반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 용어다.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비슷한 말을 찾자면 여론을 뜻하는 ‘public opinion’ 정도다. 여론은 국가 통제를 받지 않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말한다. 국민의 92%가 탄핵 승복을 바라고 70%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원하는 여론을 국론 분열로 보기도 어렵다.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13일 퇴임식에서 “민주주의의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수결의 원리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고 소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분열과 폭력적 대립을 막을 수 있다. 법철학자 한스 켈젠이 민주주의를 가장 악의적인 적조차 가슴에 품고 가야 하는 제도라고 정의한 까닭이다.
▦ 촛불도 태극기도 우리 국민이다.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6% 국민까지 포용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다고 박근혜정부의 일탈을 방조하고 국정농단에 적극 가담한 공범까지 끌어안을 수는 없다. 헌법의 명령을 거부하며 내란을 선동하는 세력까지 용서할 수는 없다. 권력 사유화에 동원된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잘못된 행태와 정경유착의 악습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통합이 적폐를 덮기 위한 속임수가 돼서는 안 된다. 적폐 청산을 통한 공정한 민주공화국 수립이라는 촛불 민심을 실천하는 게 진정한 통합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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