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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분식회계와 구조조정

입력
2016.06.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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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미국에서 굴지의 세계적 기업 두 곳이 반년의 시차를 두고 파산했다. 에너지 회사 엔론과 통신기업 월드콤이 그들인데 두 기업의 파산은 미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몰락 직전까지만 해도 엔론은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자 혁신 기업의 모범으로 자본시장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기업 경영의 21세기형 모델로서 유수 비즈니스스쿨에서 사례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기업성과의 가장 큰 부분을 주주들에게 환원함으로써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미국형 기업의 대표주자로 인정되었다. 그런 엔론의 파산은 주식회사 미국의 추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형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되었다.

통신회사 월드콤이 몰락한 것은 엔론 파산이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진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2002년 7월 21일, 통신 산업의 카우보이로 미국의 미래를 상징하고 있던 월드콤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을 신청했다. 과거 10여 년간 주식시장을 풍미해 온 스타 주식의 몰락으로 투자자들은 1,800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보아야 했고, 2만여 명의 종업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파산 규모는 1,039억달러에 달했다.

엔론 CEO 제프리 스킬링은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라 손실이 누적되고 있었음에도 자산과 이익을 과장하고, 부채와 비용을 축소하는 등의 절묘한 분식회계(회계사기) 기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특수목적자회사(SPEs) 형태의 유령회사를 만들어 투자를 유도했고 재무제표를 조작했다. 외부 감사를 담당하고 있던 업계 최대의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은 이러한 사기를 묵인하고 회계조작을 공모했다.

월드콤의 사정도 엔론과 다르지 않았다. 고교 농구감독에서 일약 재계의 카리스마로 부상한 버나드 에버스는 영화에나 나옴직한 기업 인수합병의 황제였다. 1983년 회사 설립 이후 약 20년간 70여개 기업을 합병했으니 분기당 하나꼴로 기업을 사들인 셈이었다. 이렇듯 몸집이 커지는 과정에서 늘어난 것이 부채였다. 수백억 달러의 빚이 쌓여감에 따라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월드콤은 운영경비를 설비투자 항목에 계상하는 수법으로 손실을 조작, 시장 평가를 왜곡했다.

회계 부정과 배임 등으로 엔론을 파산에 이르게 한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4개월의 징역과 1,8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회사 돈 110억달러를 횡령한 월드콤의 버나드 에버스는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두 회사의 파산을 계기로 미국은 기업 재무제표에 대한 CEO의 책임 보증,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 회계법인의 비회계서비스 제한, 기업 재무 공시 강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연방 회계법(SOX)을 제정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회계 분식도 세계적 수준인데,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는 그들 가운데 역대급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2006년부터 해마다 목표까지 정해두고 회계부정을 저질렀다. 최근 3년의 사기액만 무려 5조원이 넘는데, 이렇듯 조작으로 성과와 자산을 부풀려 놓고 임원들은 65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경영진이 자산을 마구잡이로 빼돌리는 사이 차장 한 사람은 납품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170억원을 챙겼다.

도무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으나 이사회 핵심인 산업은행과 감사기관인 회계법인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몰랐는지, 모른 척 했는지, 공모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책임은 분명하다. 소위 ‘서별관회의’를 통해 인사를 좌우하고 기업경영에 개입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구조조정이 논란이나 고용불안과 임금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려면 부당개입, 경영부실 그리고 사기 배임에 대한 책임을 우선 물어야 한다. 금융당국, 산업은행 그리고 회계부정의 주역들이 어떻게 처벌받는지 지켜볼 일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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