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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험생에 뚫린 정부청사 시설ㆍ사이버 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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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험생에 뚫린 정부청사 시설ㆍ사이버 보안

입력
2016.04.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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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취업 준비생이 정부서울청사 건물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공무원 시험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던 송모씨는 처음에는 시험 문제지를 훔치려 했다가 여의치 않자 필기시험을 치른 후 아예 성적을 조작하려고 수시로 서울청사에 침입했다. 그의 무단 침입은 2월 말부터 한 달 사이에 다섯 차례나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보안체계의 허술함과 조직의 기강해이에 기가 찬다.

정부서울청사는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집무실이 모여있는 핵심 시설로 보안등급이 높은 ‘국가보안목표시설’로 지정돼 있다. 더구나 당시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박근혜 대통령의 경계태세 강화 지시가 내려진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평범한 대학생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정도로 무방비 상태였으니 단단히 얼이 빠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만일 대학생이 아닌 테러범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송씨의 범행과정을 보면 정부의 보안의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가 여실하다. 공무원 신분증을 훔친 과정부터가 어처구니 없다. 민간인이 공무원만 이용할 수 있는 청사 1층 체력단련실에 들어가 탈의실에서 신분증을 빼내기까지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송씨는 그 다음부터 세 장의 훔친 신분증을 이용해 마음대로 18층 사무실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검색대 모니터에 나타나는 신분증 사진과 얼굴을 대조하는 등의 통과절차도 있으나마나였다. 신분증을 분실했으면 즉각 알려 불법침입에 대비해야 하는데도 신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너진 것은 정부청사 시설보안뿐만이 아니었다. 송씨는 인사처 공무원의 컴퓨터를 제 것처럼 사용했다. 비밀번호를 손쉽게 해제해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하고 시험 성적도 조작했다. 국가정보원의 정부부처 보안지침에 따르면 공무원 컴퓨터는 여러 개의 보안성 높은 암호를 설정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돼있으나 유명무실했다. ‘3년 연속 세계 최고 전자정부’라는 자랑이 무색하리만큼 사이버보안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 2012년 60대 남성이 가짜 공무원 신분증으로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불을 지르고 투신한 사건이 발생한 후 공공청사의 보안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불과 5년도 안돼 정부청사의 보안시스템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번 사건의 경위를 철저히 규명해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고,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울 후속조치도 서둘러야 한다. 스스로의 시설ㆍ사이버 보안이 이리 엉망인데도 정부가 테러방지법 제정에 이어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요구하는 것은 염치없다. 제집 문단속부터 철저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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