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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5)연예인들의 바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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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75)연예인들의 바람기

입력
2002.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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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바람기는 아무도 못 말린다.조금만 상대 여성에게 틈이 보이면 누구를 가리지 않고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바람기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을 때나 통하는 일이라는 데 연예인의 비애가 있다.

후배 코미디언 손 철(孫 哲)에게 재미난 사연이 있다. 손 철은 1980년대 초에 일어난 이 사건을 한때 자신의 단골 개그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여의도에서 일을 끝내고 서울 영동의 극장식당 코리아타운을 향해 차를 몰고 가던 어느날.

코리아타운 못 미쳐 사거리가 있었는데 자신의 차 옆에 정차한 은색 그랜저 승용차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상당한 미모의 여인이 계속 자신을 향해 눈웃음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 철은 여자가 근사한 승용차를 모는데다 꽤나 섹시한 분위기를 풍겨 마음이 솔깃했다. 은근히 그 여자의 차 옆에 자기 차를 붙이고 미소를 보냈다.

그러자 여자가 더욱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게 아닌가. 손 철은 ‘아, 돈깨나 있는 과부구나. 너 잘 걸렸다’라는 생각에 창문을 내렸다. 같은 속도로 창문을 내리는 여자.

손철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저 앞에 코리아타운에서 일합니다. 이따 놀러 오세요.” “아, 그러세요. 정말 반가워요.”

손 철은 신호가 바뀌자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다. 한 건 올렸다는 생각에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녀는 오지 않았고 손 철은 바쁜 와중에 이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내가 단장으로 있는 무궁화축구단 모임이 열렸는데 선배 코미디언 남보원(南寶元)씨가 손 철을 보자마자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 자식. 너 정말 그 따위로 놀 거야. 이 새끼, 아주 개새끼 아냐.”

내가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왜 이러슈?”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랜저 승용차의 여인이 바로 남 선배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형수는 손 철을 알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는데 손 철이 이를 오해했던 것이다.

더욱이 형수는 그날 상황을 조금 과장해서 남편에게 보고한 모양이었다. “… 그런데 밤에 저보고 술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던데요?” 아마 이랬을 것이다.

나 역시 그놈의 바람기 때문에 톡톡히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하춘화(河春花) 공연을 따라다니던 때의 일이다.

충남 공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숙소인 여관에 가보니 주인의 조카뻘 되는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옷은 허름했지만 얼굴은 미인이었다. 내 장난기 겸 바람기가 발동했다.

“아주머니! 뭐 하러 이 시골구석에서 젊음을 썩히고 있어요? 무조건 서울에 갑시다. 우선 일이 깨끗해야 사람도 신수가 트이는 법이에요. 자, 저만 믿고 갑시다.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고요.”

나는 이렇게 젊은 촌 색시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고는 며칠 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서울로 출발하는 날 아침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싸 들고 우리 일행을 따라 나선 것이다.

아침에 버스에 올라타보니 그 여자는 곱게 분단장까지 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하춘화 아버지가 물었다. “아줌마, 웬 일이야? 왜 짐까지 싸고 나선 거야?” “사회자 아저씨가 서울 가서 같이 살자고 그랬어요.”

이 사건은 하춘화 아버지가 나를 슬그머니 하춘화 승용차에 태우고 그 여자를 달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당시 내 바람기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었다.

오죽했으면 방송사 무용단 아가씨들이 공연조건으로 ‘사회자 이주일이 무용단에게 손을 못 대도록 보호해줄 것’을 내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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