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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블랙프라이데이에 없는 것

입력
2015.09.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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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회복 위해 성공 바라긴 하지만

이름뿐 행사에 소비ㆍ판매자 시큰둥

창조적이지 못한 정부주도의 한계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 시작을 하루 앞둔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에 행사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오는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백화점 71개, 대형마트 398개, 편의점 2만 5,400개 등이 참여한다. 또한 전통시장 200여 곳, 11번가와 G마켓 등 16개 온라인 쇼핑몰 2만 7000여개 점포도 동참한다. 뉴시스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 시작을 하루 앞둔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에 행사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오는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백화점 71개, 대형마트 398개, 편의점 2만 5,400개 등이 참여한다. 또한 전통시장 200여 곳, 11번가와 G마켓 등 16개 온라인 쇼핑몰 2만 7000여개 점포도 동참한다. 뉴시스

우선 이유불문하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1~14일)가 대성황을 거뒀으면 한다. 국내 소비자들은 물론 국경절 휴가 차 방한한 수많은 유커들이 통 크게 지갑을 열고, 그래서 얼어붙은 내수경기가 조금이라도 해빙되길 바란다. 나아가 이 세일이 미국의 오리지널 블랙프라이데이나 영국의 박싱데이, 홍콩의 메가세일처럼 세계적으로 정평 난 쇼핑이벤트로 자리잡아 소비자들도 웃고 제조?판매업체들도 웃는,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대거 몰려오는 첫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주변의 평범함 소비자들이나 이 행사에 참여한 유통업체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부가 야심 차게 만들었다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별로 기대할 건 없어 보인다. 그저 흔한 바겐세일 정도? 아니면 이름만 거창한 네이밍 마케팅?

우리나라는 원래 바겐세일에 무척 익숙한 나라다. 과거 같은 연중세일 관행이나, 정상가를 일부러 높게 책정해놓고 할인가를 과대 포장하는 이중가격구조는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백화점에서 제값 주고 사면 바보’란 인식이 소비자 뇌리 속엔 강하게 박혀있다. 대형 백화점의 경우 지금도 신년 봄 여름 가을 송년 등 1년에 다섯 차례 바겐세일행사를 갖고 있으며, 정기 세일기간만 다 합쳐도 연간 100일에 육박한다.

지금은 정부가 블랙프라이데이를 만들지 않았어도 백화점들이 원래 가을 정기바겐세일을 여는 시기다. 대형 백화점들은 이미 가을 정기 세일을 ‘코리아그랜드세일’이란 이름으로 개최 중인데, 이 또한 두어 달 전 정부가 메르스로 인한 소비쇼크 타개를 위해 만든 이벤트 중 하나다. 결국 원래 있던 가을 정기바겐세일이 코리아그랜드세일이 됐고, 그 안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또 하나의 쇼핑행사가 끼어들어간 거다. 그러다 보니 백화점들은 블랙프라이데이 이벤트 자체에 시큰둥할 수 밖에 없는데, 실제로 주요 백화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블랙프라이데이를 띄우는 문구나 코너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는 범위가 대형마트 전통시장 온라인쇼핑몰까지 확대됐다고는 하지만, 가격할인 폭이 미미한데다 원래부터 크고 작은 판촉행사가 많은 매장들이다. 어딜 봐도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결코 새롭게 느껴질 수 없는 이유다.

개인들의 돈 쓰는 방식, 소비스타일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거나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이름까지 따온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는 100여년전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연말대목을 겨냥한 백화점들의 쇼핑이벤트로 시작됐고, 매출증가로 기업들이 적자(붉은 색)를 벗어나 흑자(검정 색)로 전환한다는 의미에서 ‘블랙’으로 아름아름 불려지며 오늘날 미국 최대의 쇼핑시즌으로 자리잡게 됐다. 미국 정부가 이 날을 지정한 것도 아니고, 그 이름을 붙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영국의 박싱데이는 성탄 다음날 귀족들이 하인들에게 음식이나 선물을 박스에 담아 주던 관행이 유통점들의 연말할인 이벤트로 활용되면서 영연방국가들의 대표적 쇼핑행사로 굳어지게 됐다. 이 또한 영국정부가 주도한 건 아니었다. 소비자들의 오랜 습관과 기업의 정교한 마케팅전략이 접합되고, 오랜 시간 변형과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 블랙프라이데이와 박싱데이가 된 것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시장은 정부보다 뛰어나다. 불공정거래나 소비자침해 요소만 없다면 기업의 상술이 어떤 정부 캠페인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공무원들이 책상에서 만들어 관련업체들을 억지로 끌어들여 급조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이 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민간업체와 기업 마케팅전문가들한테 모든 걸 맡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 같아선 내년 이맘때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두 번째 시즌행사를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소비를 늘려보려고 머리를 쥐어짰을 공무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고, 이번 이벤트가 꼭 잘되길 바라지만, 매번 창조경제 창조경제하면서도 정작 창조성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블랙프라이데이를 만드는 정부가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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