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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제주 청룡수산 대표 문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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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제주 청룡수산 대표 문영섭

입력
2010.05.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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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생선은 바다가 주고 맛있는 생선은 '손'이 주죠"

우리 남편은 고등어를 무척 좋아하지만 등 푸른 생선 특유의 기름기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편이다. 제 아무리 몸에 좋은 기름이라도 먹고 나서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면 아내 된 자로서 고등어를 기름기가 걷히도록 바싹 구울 수밖에 없다. 바싹 구운 고등어의 속은 건조하다. 풍미가 떨어진다.

아니다, 모든 고등어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손길 깊은 장인이 직접 골라 준 생선, 그것도 청정 제주 바다에서 나온 생선, 30년 세월 동안 품질을 보장해 온 생선은 바싹 구운 고등어라도 속살 촉촉하게 맛이 좋기만 하다. 제주 청룡수산 문영섭 대표의 30년 제주 생선 이야기를 들어본다.

창업 30년 이야기

'제주 수협 5번 중매인'은 문영섭 대표를 몇 십 년간 따라다니고 있는 수식어다. 수년간 농업 기술 분야의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수산업 분야로 생업을 틀었다는 문 대표는 제주 표선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삼 남매의 막내, 게다가 모친이 마흔 넘어 낳은 늦둥이로 고생 덜하고 사랑 받으며 자랐다. "어렸을 적, 표선 바닷가 백사장에서 무척 뛰놀았어요. 그렇게 놀다 들어오면 어머니는 막내아들 먼저 맛난 것을 챙겨주시곤 했지요."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선뜻 수산업에 뛰어 들게 된 계기도 어머니가 손수 발라 밥에 얹어 주시던 옥돔의 맛이 그에게는 '행복' 그 자체로 기억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한다. "뽀얗고 맛이 은은한 제주 옥돔을 제사상에 올렸다가 막둥이인 저를 먹이시곤 했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표선의 작은 표구에 자리를 잡고 일반 유통업 등록을 한 것이 1980년. 바로 30년 전 5월30일이었다. 통통배 여섯 척과 계약을 맺고 달려들었다. 공무원 시절 한 달 치 월급이었던 14만9,500원 상당의 손실을 사업시작 하루 만에 입었다.

집에서는 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고 당시 갓 태어난 첫째 아이를 등에 업은 부인은 남편의 사업을 용납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 대표는 굽히지 않고 바로 중매인으로 등록, 시장을 혼자 뛰어 들어 어떻게든 버티기로 한다. 첫 반년은 가정의 위기였지만, 문 대표의 열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부인이 그 이후 마음을 돌려 적극 내조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고깃배는 5톤 이내의 그야말로 '통통배'였어요. 하지만 바다자원이 풍부했을 때라 한 번 나갔다 하면 옥돔이나 백조기를 200~500㎏씩 거두어 오곤 했지요." 당시에 비해 월등히 발전한 장비와 노련해진 기술에도 불구, 이제는 바다에서 하루에 낚을 수 있는 양이 20~50㎏ 남짓이다. 지난 30년간 과학이 발달한 만큼 바다는 가난해진 것이다.

부부가 하나의 일에 매달리면서 사업은 조금씩 에너지를 받기 시작했다. 어렵게 빌려 마련한 자금으로 생선을 골라 사고 냉동비축 했다가 명절 때 파는 식의 유통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수출 판로가 뚫렸다. 재일교포였던 모 업체의 사장이 대량의 옥돔주문을 넣은 것이었다. 그것도 내수로는 소비가 뜸했던 마리당 700그램 이상의 옥돔과 호텔 식당 등에서 필요한 150그램 내외의 휠레(서양식에서 쓰이는 용어로 포 뜬 생선 살)용만 주문했다.

안정된 물량이 확보되니 냉장고 30평에 동결실 10평짜리 시설을 인수할 수 있었다. 이후 깔끔한 유통 처리와 보장된 품질이 소문나면서 대형 백화점 납품이 차례로 이어졌다. 당시 모 백화점과 독점으로 진행했던 '1000원 옥돔' 기획은 지금도 업계의 획기적인 마케팅 사례로 꼽힐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 백화점에만 일 년에 30~40톤의 옥돔을 납품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생선 맛도 사람이 만들어

"이 분들이 저와 25년을 함께 한 식구들입니다." 반도체 공장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작업장 내부에서 너덧 분의 연로한 직원들이 업무 중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분들이 연구원 같은 작업복 차림으로 활기차게 일한다.

청룡수산에 한 번 입사하면 십 년 세월이 금방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환갑을 넘긴 직원이 네 다섯 명,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열정적으로 근무하는 직원이 또 너 댓 명, 십오 년 된 직원, 십구 년 된 직원 등 연차들이 높은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직원들이 청룡수산의 생선을 만지면서 살 곳을 마련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공부 시키고 또 시집 장가를 보내며 살아왔다는 것이 문영섭 대표의 자랑이다.

'좋은 생선'은 깨끗한 제주바다가 주지만, 정성 넘치는 손질과 깨끗한 처리, 3년 묵은 신안 천일염으로만 간을 하는 등의 엄격한 관리가 '맛있는 생선'을 완성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표는 경영자라기 보다는, 30년 손맛을 일군 생선 손질과 유통의 장인이라 할 만하다.

오래 근속한 직원들이 꼬마 때부터 봐 온 문 대표의 아들이 실무를 뛰기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 '창업주의 아들'이라고 소개받지 않았으?몰랐을 만큼 그 누구보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만 다니는 직원이다. 가업을 잇는 2대 기업이 되면서 문 대표는 다시 도전을 하게 된다. 바로 'HACCP'인증을 받은 일이다.

'위해 요소 중점 관리식품'으로 보장 받을 수 있는 'HACCP'인증은 식품의 원재료부터 제조, 가공, 보존 등의 과정 전반 그러니까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게 전까지에 관한 심사를 엄격하게 받는다. 그러니까 상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심사 포인트는 위생 또 위생, 그래서 문 대표의 작업장은 반도체 공장에 맞먹는 청결함이 생활화 되어있다.

직접 시장에 못 가는 날에도 화상 통화 기능을 이용해서 매입을 결정 할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하는 문 대표는 평생 새벽 5시가 업무 시작이다. 제주에서 가장 신선하다는 생선은 다 먹어본 문 대표에게 무슨 맛을 더 원하는지 물었다.

"참깨 나무에 불을 붙여 다 타버리기 전 불꽃에 옥돔을 구워 먹고 싶어요. 옛날에 우리어머니가 그렇게 구워서 참기름을 발라주던 맛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아! 듣기만 해도 멋이 넘치는 맛이다. 눈동자가 투명하고 피부가 깨끗한 제주도 생선이라면 '깻낭(깨나무의 제주도 방언)' 한 단만 있어도 미식이 멀지 않겠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질이 적은 옥돔은 뼈째 푹 고아서 죽으로 먹어도 맛있다. 제주 은갈치로 국물을 내고 호박잎을 둥둥 띄운 국은 그 색감이 신비롭다. 장인이 고른 청정 제주 생선은 수입산 생선, 마구 다뤄진 생선에서 맛볼 수 없는 우아한 색과 맛이 난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 탈라 토속의 맛은

제주 바다가 눈에 아른거리는 계절이 다가왔다. 세계적으로 '청정지역'이라 인정을 받을 만큼, 제주도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고유의 문화를 자랑한다. 특히 제주도를 걷는 형태의 여행이 붐을 이루게 되면서 자연히 그 지역의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식당에 가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메뉴가 갈치조림이나 해물 뚝배기다. 그렇지 않으면 횟집이 많다. 문득 궁금해졌다. 진짜 제주의 토박이 음식 맛은 무얼까?

제주 향토음식 보존 연구원의 양용진 부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는 생활양식 자체가 육지와 다르다. 섬이기 때문에 음식을 비축할 필요 없이 그날 잡은 생선을 재료로 해서 음식을 만들어 왔다.

"생선을 제외한 식재료는 집마다 작은 텃밭을 일궈서 해결하는 일이 많았어요." 작은 텃밭에서 딱 먹을 만큼 뽑아온 야채에 딱 먹을 만큼만 잡아 온 신선한 생선으로 요리하는 밥상이 말하자면 전형적인 제주 음식의 기본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제주음식의 생명이 '재료의 신선함'이라는 말이 된다.

신선한 재료는 강하게 양념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살짝 익히기만 하면 '요리'가 된다. 그러니까 맹물에 생선을 넣고 국 간장으로 간만 맞춰도 신선한 생선에서 우러나오는 담백한 단맛, 생선뼈를 우려낸 진한 국물 맛 등이 더해져 입에서 오래도록 그리운 맛이 된다. 양용진 부원장에게 진짜 제주식 우럭 요리법을 물어보았다. 제주에서도 본래 고춧가루 팍팍 넣은 우럭찜을 먹어왔는지 궁금했다.

"생선은 간장조림을 기본으로 하고, 우럭의 경우 콩을 볶아서 넣었어요. 그러면 적은 양의 생선으로 양을 불릴 수 있고, 콩에서 나온 전분 성분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어 소스처럼 되는 거죠." 볶은 콩을 더한 우럭찜이라!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동하는 맛이다.

이 밖에도 갈치에 늙은 호박을 노랗게 썰어 넣고 끓인 국이나 고등어로 끓인 죽도 생선이 신선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만들 수 있는 맛이다. 특히 고등어의 경우, 극도로 신선하지 않으면 절대로 죽을 끓여 먹을 수 없는 일이겠다. 제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가정식 재료 가운데 보말이나 깅이가 있다. 보말은 고동의 일종으로 제주도에서는 죽이나 국의 재료로 쓴다고. 방게의 제주 방언인 깅이도 죽의 재료로 이용된다.

양 부원장이 꼽은 제주 음식의 중요 요소로 된장이 있다. 양념을 주로 된장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제주도에서는 온도와 습도가 딱 맞아 된장이 맛있게, 빨리 발효되는 편이라고.

특히 유약을 번들하게 칠하지 않은 제주 특유의 옹기에 담아두면, 여느 된장에서 나는 군내가 잘 일이 없어 '생된장'의 형태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쌈장 대신 된장을 생으로 상에 올려 야채도 찍어 먹고 해 봤다.

제주 생선에 이은 명물이 제주 된장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넉넉한 바다를 끼고 살아서 욕심 부릴 일 없는 제주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우아한 음식 맛을 직접 먹어 볼 수 있는 '진짜 제주 음식점'이 늘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제주=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 사진 임우석

■ 最古 最大 동문시장

제주도에서 일반 가정의 식단을 위해 가장 값싸게,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동문시장이다. 하루 평균 팔천 명에서 많게는 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동문시장을 찾는다. 동문로터리 앞에서 중앙로터리까지 이어지는 시장은 제주 최대 규모이고 역사도 가장 오래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시장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고 장태, 고등어, 갈치, 옥돔, 쥐치 등이 깨끗하게 진열되어 있다. 활어를 담은 어항에는 구문쟁이, 다금바리, 북바리, 갓돔으로 불리는 돌돔 등 고가의 어종이 유유히 헤엄을 친다. 육지에서는 만나기 힘든 자연산 홍해삼, 유난히 통통한 한치, 영양 많은 전복 등이 작은 바구니에 담겨 합리적인 가격대에 선을 보인다.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면 동문시장 나들이를 빼놓을 수 없다. 횟집에서 싱싱한 산물을 먹든, 제주 사람들이 가는 시장 안쪽의 순대국밥 집에 가든, 주방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숙소에 묵어 당장 저녁거리 장을 보든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될 것이다.

동문시장은 소비자를 우선으로 하는 '인증제도'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원산지, 수량 등을 엄수 한다. 시장 입구에 앉아 계신 할머님들은 보말이나 성게알 같은 부피 작은 생물과 손으로 거둔 채소 등을 파신다.

오천 원, 만 원어치를 사다가 국이나 죽으로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니 한 바구니 정도 사 봄 직 하다. 제주식 요리법은 해산물을 사면서 토박이 어르신들께 여쭈어 보자. 며느리에게 알려주듯 자상하게 레시피를 전수해 주실 게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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