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수습 중 경찰관 희생 예방 개발 '리프트경광등' 차량 188대 투입
"윙" 소리내며 경광등 1m 솟구쳐, 형광등 80배 'LED 화살표' 등장
“오토바이 운전자가 도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어요.”
11일 오전 2시 서울 사당동 까치고개 남부순환로에서 4차로를 달리던 125cc 오토바이 운전자 A씨가 우회전을 하려다 인도 경계석을 들이받고 넘어졌다. 행인의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관악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박민국(42) 소용환(42) 경사는 A씨의 호흡과 맥박을 살피며 즉시 119 신고를 했다. 그런데 사고 수습을 하던 두 경찰관 바로 옆으로 뒤따르던 차량들이 제한속도(60㎞)를 훨씬 넘겨 쌩쌩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새벽인 데다 마침 이날은 대기 중 미세먼지로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 언제든 사고 지점에서 차량 2차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바로 그때 순찰차 ‘관악04호’가 “윙”하는 소리와 함께 변신하기 시작했다. 지붕에 달린 경광등이 하늘 방향으로 솟구치기 시작한 것. 1m 가량 상승한 경광등 밑으로는 환하게 반짝이는 ‘LED 화살표(←)’가 등장, 멀리서부터 사고 발생을 알렸다. 그제서야 운전자들은 사고 지점 500여m 전에서 핸들을 돌려 우회하기 시작했다.
이날 상황은 경찰이 차량 2차 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실시한 야외기동훈련(FTX)의 일환이었다. ‘트랜스포머’를 연상케 하는 훈련의 주인공은 최근 경찰이 개발한 ‘리프트경광등’ 순찰차다.
신형 순찰차가 탄생한 배경에는 도로 위 안전 무방비 상태에서 차량 사고를 수습하다 순직한 경찰관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2013년 4월 경기 여주경찰서 소속 윤태균(당시 52세) 경감은 어두운 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치우다가 달려오던 차량에 치여 숨졌다. 지난달 31일 새벽에도 충북 청주 경부고속도로에서 고장 난 차량을 안전조치 하던 고속도로순찰대 소속 조희동(당시 49세) 경위가 승용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경찰은 2013년 말부터 현대자동차 등 협력사와 신형순찰차 개발에 돌입했으며, 지난해 8월 안전성검사를 끝마치고 리프트경광등 순찰차 188대를 전국 고속순찰대(90대)와 일선경찰서 교통순찰대(98대)에 투입했다. 이 순찰차는 세월호 참사 때 진도 팽목항에서 시범 운행을 하며 세간에 처음 알려졌다.
리프트경광등 순찰차의 기본임무는 사고 지점에서 20~30m 떨어져 다른 운전자들에게 사고 발생을 알리는 것이다. LED 화살표의 밝기는 형광등의 80배에 달해, 악천후에도 3~4km 거리에서 식별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야간 음주단속, 재해 발생시 도로 차단, 심야 치안활동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총알을 피하는 심정으로 일해왔다”는 교통 경찰관들은 리프트경광등 순찰차의 보급을 반기고 있다. 소용환 경사는 “새벽에 도로 한가운데서 업무를 보면 사고 위험에 늘 가슴을 졸였는데 든든한 우군이 생겼다”며 “더 많은 차량이 보급되면 안전사고도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같은 호평에 경찰은 한층 개선된 모델을 올해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황영선 경찰청 특수장비계장은 “경광등이 올라가는 순찰차는 해외에도 몇 곳 있지만, 한국처럼 방향지시등 기능까지 갖춘 곳은 없다”며 “간단한 메시지 입력이 가능한 신모델도 조만간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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