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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

입력
2017.09.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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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주치고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기 쉽다. 그래서인지 습관화된 단점은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에는 여간 해서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추석에 즈음해서인지 최근 부쩍 070과 6으로 시작하는 판촉전화들이 자주 걸려온다. 짜증이 날 수준이다. 가입했던 사이트, 마트, 금융회사 등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의 여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원인은 형식적 동의제도에도 있다. 개인정보활용동의를 위한 약관은 어렵고 길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동의는 불법을 조각한다”는 원칙에 철저히 따른다. 금융거래에서도 약관의 내용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은행원이 연필로 동그라미를 친 곳에 서명을 한다. 서명하지 않으면 보편적으로 필요한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의도 동의일까라는 근본적 의문이 생기는 이유이다.

얼마 전 사립유치원들이 시위에 나섰다. 사립유치원 측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상에서 이익을 위한 시위를 보는 일은 너무 빈번해서 마치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 국회, 법원을 통한 갈등의 해결통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까지의 문제해결 관행도 일조하고 있다. 정책의 정당성 유무에 상관없이 시끄러운 것을 피하려다 보니 적당한 수준의 미봉책이 남발되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단기적 성과에 집착했던 평가체계도 조용히 일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이는 결국 시끄럽게 하면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낳았다.

금감원의 채용비리가 문제되고 있다. 금융검찰로서 막강한 권력 그리고 업무의 속성상 필요한 독립성은 외부의 간섭을 물리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투명성에 둔감한 폐쇄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독립성을 핵심요소로 하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갖는 한계이다. 대법원장의 교체와 맞물려 법원의 관료·고립화 그리고 내부적 민주성의 회복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큰 규모의 공수처 설치안이 나왔지만 아쉽게도 공수처 스스로의 투명성 확보수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개혁의 대상이 된 검찰 역시 그 시작은 프랑스에서 비대하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경찰과 법원을 견제하기 위해 시민혁명 이후 탄생한 것이었다. 독립은 민주적 정당성을 전제로 한다. 누구로부터도 간섭 받지 않으면서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만한 정당화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권투 등 격투술을 배우려는 초ㆍ중등학생들의 발길이 늘었다고 한다. 부산여중생폭행사건 등에 보듯 학교폭력이 저연령화하고 그 정도도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 대신 생존을 위해 청소년 스스로가 자위능력을 키워야만 하는 현실은 답답하기 까지 하다. 소년법 개정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예방이다. 구체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조사와 대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그간 조사는 익명성이 훼손되는 등 형식적이었으며, 그 결과에 대한 학교 측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의 구성은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았으며, 피해학생에 대한 구제와 가해학생의 징계 역시 각기 다른 기관이 담당하고 있어 연계성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놓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간과했던 요소들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때때로 이 중 일부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눈에 띠지 않았다고 해서 사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러한 요소들이 건강한 사회와 그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면 단순히 일상의 소소한 실수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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