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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서울팀을 없애라” 청와대가 개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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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서울팀을 없애라” 청와대가 개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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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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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챌린지(2부리그) FC안양 팬들이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클래식(1부리그) FC서울과 FA컵 32강전에 앞서 홍염을 터뜨렸다. 연합뉴스
프로축구 챌린지(2부리그) FC안양 팬들이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클래식(1부리그) FC서울과 FA컵 32강전에 앞서 홍염을 터뜨렸다. 연합뉴스

프로 클럽의 연고 이전은 옳고 그름 혹은 선과 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지난 19일 프로축구 클래식(1부리그) FC서울과 챌린지(2부리그) FC안양의 FA컵 32강전을 보며 든 생각이다. FC서울은 2004년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겼다. FC안양은 연고 이전에 반대하던 팬들의 염원을 담아 2013년 창단된 팀이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두 팀이 13년 만에 처음 격돌했으니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대거 쏠렸다. 일부 팬들은 아직도 연고를 옮긴 서울을 ‘북패’(북쪽의 패륜)라고 비난하지만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프로축구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로축구는 1983년 출범했는데 정부의 반대로 지역연고제를 채택하지 못했다. 정부는 1986아시안게임, 1988서울올림픽을 대비해 지방 구장을 정비, 보수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지역연고제가 지역감정을 조장할 거란 우려도 있었다.

연고 개념이 확실했던 프로야구에 비해 프로축구가 시들하자 1987년 대한축구협회는 유공(인천경기), 현대(강원), 럭키금성(충남북), 포항제철(대구경북), 대우(부산경남)에 일방적으로 연고를 배정했다. 럭키금성 등이 서울을 원했지만 묵살됐다. 1990년 연고지 재조정이 이뤄져 유공과 일화, LG(럭키금성)가 서울(동대문운동장)을 함께 쓰기로 했다.

하지만 1995년 말, 이른바 ‘서울 공동화(空洞化) 정책’에 따라 서울 연고 3개 구단은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을 맞는다. 사람과 돈이 몰린, 프로스포츠 입장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덤벼들어야 할 시장을 다 같이 비워놓자는 희한한 발상이었다. 프로축구 발전을 저해한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이 정책은 대한축구협회가 나서서 밀어붙였다.

2002 한ㆍ일월드컵 유치에 앞서 지방 활성화를 위해서라거나 일본 프로축구 J리그가 초창기에 도쿄를 비우는 것을 보고 벤치마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개입설’도 있다. 당시 언론들은 ‘청와대가 연고 이전 지침을 프로축구연맹에 하달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일개 프로클럽의 연고 이전에 정부가 관여했다는 것인데 정확히 이유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프로축구30년사’ 등의 사료에도 별 다른 내용이 없다. 축구 관계자들은 구단들이 서울을 비울 수 없다고 반대하자 당시 한ㆍ일월드컵 유치를 위해 정부와 자주 교류하던 축구계에서 ‘압력을 넣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지 않았겠느냐’라고 추론한다.

LG도 별 수 없이 안양으로 떠났다. 창원, 청주 등으로부터도 러브 콜을 받았지만 전용구장을 지어주고 훈련장과 숙소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안양시의 약속을 믿었다. 때마침 1996년 수원 삼성이 창단해, 안양과 수원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지지대더비’(수원과 안양을 잇는 1번 국도 고개에서 유래)가 탄생한다. 지금 K리그에서 최고의 흥행카드로 꼽히는 ‘슈퍼매치’의 시초다. 하지만 안양시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뤘다. 프로축구 관계자는 “LG를 유치한 시장이 물러나자 지자체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결국 LG는 ‘천만 수도’ 서울 입성을 결심하고 2004년 1월, 프로연맹 이사회 인준을 받아 ‘FC서울’ 시대를 연다.

프로 클럽이 지역에 기반을 둔 유럽에서는 연고 이전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 일본 등 기업형 리그가 활발한 곳에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지자체로 연고를 옮기는 일이 종종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만 봐도 뉴욕 양키스는 볼티모어, LA 다저스는 브루클린에서 옮겨왔다. 미국 프로풋볼(NFL) LA 램스는 클리블랜드→LA→세인트루이스→LA로 수 차례 연고지를 바꿨다.

팬들이 2006년 한국-앙골라의 대표팀 평가전에서 SK의 제주 연고 이전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팬들이 2006년 한국-앙골라의 대표팀 평가전에서 SK의 제주 연고 이전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에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대전→서울), 프로농구 오리온스(대구→고양) 등이 있다. 프로축구만 봐도 서울과 비슷한 이유로 일화천마가 2000년 천안에서 성남으로 왔고, SK는 2006년 부천에서 제주로 갔다.

2004년 4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부산의 K리그 개막전. 서울이 연고를 옮기고 이곳에서 치르는 첫 경기였다. FC서울 제공
2004년 4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부산의 K리그 개막전. 서울이 연고를 옮기고 이곳에서 치르는 첫 경기였다. FC서울 제공

연고 이전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FC서울의 탄생이 한국 축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서울은 성적과 흥행, 모든 면에서 리그 최고 구단으로 발돋움했고 한국 프로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놨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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