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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시각, 노랫말은 청각 텍스트... 전혀 다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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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시각, 노랫말은 청각 텍스트... 전혀 다르더라구요”

입력
2017.04.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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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는 내 생업”

곡이 완성된 후 가사를 붙여

가수 음색ㆍ창법 생각하며 써

*신인 작사가 육성 강연 시작

“예쁘게 쓴다고 맛이 살진 않아

좋든 싫든 중독성이 담겨야죠”

자기 이야기(시)를 쓸 때 가명, 남의 이야기(가사) 쓸 때 본명을 쓰는 구현우 시인은 “시는 손으로 종이에 쓰고, 가사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써 작업방식에 차이를 둔다. 두 자아를 나눠 일이, 아직은 재미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자기 이야기(시)를 쓸 때 가명, 남의 이야기(가사) 쓸 때 본명을 쓰는 구현우 시인은 “시는 손으로 종이에 쓰고, 가사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써 작업방식에 차이를 둔다. 두 자아를 나눠 일이, 아직은 재미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일 분이 지나고 정적은 계속된다 반쯤 열린 입술 그렇게 더는 이야기하지 못한다// 너는 사람의 손보다 작은 동물을 편애한다// 무해한 겨울이 오고 우리는 눈의 취향을 공유하지않는다 십 분 전에는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주제가 있었다’ (시 ‘홀’ 부분)

‘오 보이 날 비춘 햇빛 오 보이/ 모두 네 눈빛 오 보이/ 넌 너무 눈이 부셔 헤이/ 오 보이 귓가에 살며시/ 오 보이 달콤한 목소리/ 오 보이 잠든 날 깨워준 너’ (그룹 레드벨벳의 노래 ‘오 보이’ 부분)

이 두 작품, 저자가 한 사람이다. 2014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구현우 시인의 생업은 작사가, 강연기획자. 노래에 관한 저작권은 본명인 구태우로 등록했다. 레드벨벳을 비롯해 루나의 ‘브리드’ 등 아이돌 노래의 가사를 썼다.

“요즘 노래에 실린 ‘외계어’ 사례는… 손담비의 ‘퀸’이 대표적이죠. 가사의 ‘아틸리싸인’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싶어 찾아보니 가사집에는 ‘언틸 유 디사이드(until you decide)’로 적혔던데 들릴 때나 포털 대중가요 가사 코너에는 ‘아틸리싸인’으로 떠요.”

지난달 30일 서울 신촌 스쿨 파스텔에서 열린 ‘노랫말 쓰기 처음학교’ 강연에서 그는 “결국 노랫말은 귓가에 맴도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16일부터 시작한 강연은 6주간 수업을 듣고 파스텔뮤직 소속 뮤지션들의 노래에 가사를 붙이는, 신인 작사가 육성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강연 전 만난 그는 “시와 노래가사 쓰기는 전혀 다르다”고 단언했다. “시는 문학에, 가사는 노래에 가까워요. 다시 말해 시는 시각 텍스트, 노랫말은 청각 텍스트죠.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직업 작사가는 거의 100퍼센트, 곡이 완성된 후 가사를 붙이기 때문에 멜로디라는 ‘기본 틀’을 벗어나선 안 되고요.” 작사는 짧게는 하루 전, 길어도 닷새 전에 의뢰가 들어와 순발력이 더 필요하단다. “시인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만 작사가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면 페르소나(가수)에게 ‘빙의’를 해야 돼요. 가령 여자 아이돌 노래라면 그 가수의 음색, 말투, 창법을 생각하며 노랫말을 붙이죠.”

아이돌 노래 작사하는 구현우 시인. 낮에는 주로 강연을 준비하거나 시를 쓰고 강연 끝난 새벽에 가사를 쓴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아이돌 노래 작사하는 구현우 시인. 낮에는 주로 강연을 준비하거나 시를 쓰고 강연 끝난 새벽에 가사를 쓴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그가 시와 가사를 함께 쓰게 된 사연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는데, 노래 가사를 잘 쓰고 싶어 “가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시를 공부하다 “시가 좋아져” 고교 2학년 때 예술고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대학도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출판사와 신문사의 신인상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2014년 작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10개월 간 작사법을 배우고 10곡을 줘요. 그 중 한 곡을 실제로 가수가 녹음하면서 운 좋게 데뷔할 수 있었죠.” 이렇게 만든 곡이 슈퍼주니어 D&E의 ‘브레이킹 업’이다. 그렇게 작사법을 가르치고 일할 기회도 준 음악 기획사가 아이돌 노래를 많이 의뢰 받는 잼팩토리였단다. 이전까지 아이돌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그는 작사를 배우며 처음으로 소녀시대 앨범을 처음부터 최신작까지 들어봤다. “듣다 보니 노래가사에 자주 쓰는 단어, 소재, 스토리 패턴이 있더라고요. 소속사 가수 별 특징을 노트에 기록하고 분석하니까 경향이 보였죠.”

시도 쓰고 가사도 쓰는 그는 ‘옛날엔 시적인 가사가 많았다’는 세간의 핀잔을 어떻게 생각할까. 구 시인은 “요즘도 좋은 가사는 충분히 많다”고 말했다. “옛날 방식, 요즘 방식이 있을 뿐이죠. 요즘 대중음악은 1분 안에 승부를 본다고 말해요. 흔히 ‘귀벌레’라고 말하는, 좋든 싫든 귀에 남고 입에 흥얼거리게 만드는 중독성이 가사에 담겨야 하죠. 샤이니의 ‘링딩동’처럼요. 장르마다 어울리는 화법이 있어요. 한국어 의미를 예쁘게 말한다고 가사 맛이 살진 않습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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