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민승 기자

등록 : 2017.07.19 18:03

[짜오! 베트남] 반바지 입고 지내는 제사, 이상해요?

<19> 이것이 베트남 실용주의

등록 : 2017.07.19 18:03

<19> 이것도 베트남 실용주의 – 제사 참관기

지난 14일 호찌민 시내 한 가정 집 옥상에 차려진 제사상. 안방이 아니아 하늘과 가까운, 높은 곳에 차린다고 한다.

베트남을 소개할 때 ‘실용주의’는 단골 소재다. 오늘의 이익을 위해 어제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현재의 경제ㆍ안보 이익을 위해 한 때 사생결단으로 싸웠던 미국과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잡는 모습에서는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이익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은 제례(祭禮)에서도 마찬가지다.

격식은 최소한으로

지난 14일 오전 11시, 호찌민 시내 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팜 띠 민 뚜이(60)씨 3층 집 옥상. 전날 장을 본 재료들로 이날 아침까지 장만한 각종 음식들이 옥상에 마련된 제사상으로 옮겨졌다. 뚜이씨 남동생이자 제주(祭主)인 팜 남 짜(54)씨가 “이제 합시다”라는 말과 함께 제사가 시작됐다. 이 날은 두 남매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쟁 중 중부전선에서 전사한 지 53년이 지난 날이다. 안방이 아닌 옥상에 제사상을 차린 이유에 대해 팜 띠 민 뚜이씨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정 종교가 있는 집안은 아니라고 했지만 ‘망자’와 ‘하늘’을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시작합시다”라는 말과 함께 영정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간단한 목례 세 번을 한 제주 짜씨는 향 3개를 향로에 꽂은 뒤 제사상 앞에 앉아 있지 않고 그 길로 1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자신이 젖먹이 때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뚜이씨는 오히려 “모두 저렇게 한다. 그럼 남동생이 무엇을 더하면 좋겠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닌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쑥 들어갔다. 짜씨도 단추 2개가 풀어진 반팔 셔츠에 편한 바지 차림. “제사 지낼 때 따로 옷을 입지 않느냐”는 물음에 민 뚜이씨의 딸 팜 티 루 뚜이(25)씨는 “제사를 통해 조부를 기억하고, 조부 기일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한번 모이는데 의미가 있다. 제사 참석 복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후 찾아오는 다른 방문객들 복장도 시장통에서 나왔거나, 동네 골목에서 장기를 두다 온 듯한 옷차림이 많았다. 이들도 도착 순서대로, 옥상으로 올라와 예를 표시했다. 향을 꽂고 세 번 목례 뒤 자리를 빠져 나갔다.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더러는 과일이나 과자를 제단에 올렸고 어떤 이는 술을 갖다 놓기도 했다. 베트남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초코파이는 이날 상에 보이지 않았다.

그림 2베트남 제사는 형식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다. 제사를 모시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준비해 편안한 복장으로 치른다. 며느리 응우옌 티 탄 후엉씨가 돌아가신 시아버지 영정 앞에 분향하고 있다.

산 자를 위한 제사

낯선 것은 복장뿐만이 아니었다. 장남이 처음으로 분향한 것 말고는 우리와 다른 점이 많았다. 예를 표시하는 데 있어 참석자 사이에 ‘서열’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착한 순서에 따라 혹은 마음 내키는 대로였다. 뚜이(24)씨는 “이런 자리에서 존경심을 표시하는 데 순서는 없다”며 “예를 표시하는 횟수나 그 순서에 따라 존경심이 달라진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손님이 예를 표시하고 나면 휴대폰, 돈, 신발, 금, 펜 등을 본떠 만든 종이를 태우는 의식을 치르고 제사는 끝난다. 며느리 응우옌 티 탄 후엉(50)씨는 “시간이 없거나 요리를 할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경우 음식 준비도 사람을 불러서 하면 된다”며 “제사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철저하게 산 사람의 편의에 맞춰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제례 형식은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요즘 웬만해선 여성들도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종류와 가지 수에 있어 지역은 물론 집안마다 차이가 난다. 남부지방의 경우 조림 요리와 삶은 요리, 찜 요리, 볶음 요리 등 4가지가 주로 오른다. 특정 음식이 아니라 요리법을 규정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음식이 오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후엉씨는 “지역별 집안별로 차이는 있지만 기본 원칙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 살아 있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라며 “오늘 준비한 음식도 시누이와 아들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베트남 제사상에 초코파이가 많이 오르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초코파이는 단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집안 제사상에 자주 등장한다.

4가지 요리 방법으로 만들어진 9가지 제사 요리. 모두 이 집 식구들이 좋아한다는 음식들로 채워졌다.

제삿날은 차라리 잔칫날

통상 제사는 첫 번째 향이 향로에 꽂히면서 시작되고, 그 향이 모두 탈 때까지, 20분가량 이어지지만 이날은 손님이 연이어 찾아 오면서 1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반바지 차림으로 제사에 참석한 집안 장손 팜 두이 호앙(16)군은 “아버지 친구들이 스무 분 넘게 오셨다”며 “대다수가 직장인인데 모두 휴가를 내고 오신,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친구 아버지 제사에 참석한 팜 남 짜(54)씨의 친구들과 친인척들이 제사를 마친 뒤 인근 식당에서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오후 1시에 이 곳에 다 모여 앉은 이들은 오후 5시까지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베트남 제사는 참석한 이들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오전 11시에 시작한다.

한국처럼 밤이 아닌 한낮에 열리는 친구 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까지 내서 왔다는 말에 놀라움을 표시하자 뚜이(60)씨는 “대부분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사람들이 동병상련으로 이렇게 모인다”며 “낮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고, 밝을 때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은 제삿날이라기보다 차라리 잔칫날에 가까웠다. 이날 손님들은 인근 식당에 별도로 마련된 자리에 둘러 앉았다. 좁고 긴 베트남 특유의 주택 구조상 제사 참석자들이 한 데 앉을 자리기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모인 이들은 낮술을 마시며 오후 5시까지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장손 팜 두이 호앙군이 할아버지 제사를 다 지낸 뒤 종이로 만든 모형 돈과 신발, 전화기 등을 태우고 있다. 해당 물건들을 망자에게 전달하는 의식이다.

종이로 만든 모형 돈, 금, 카드, 안경, 면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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