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는 표심 의식 정책 뒤집기
정부는 청와대 눈치 보며 휘둘려
직역연금 개혁 무기한 연기, 연말정산 소급 적용,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
내용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고, 원칙이 무너지고, 몇 년에 걸쳐 마련한 방안이 없던 일로 치부된 굵직한 정책이 최근 한달 남짓 만에 3개나 된다. 정책 컨트롤타워는 고사하고 정부와 여당, 청와대 등 정책 결정권을 쥔 3자가 각자 셈법에 빠져 이합집산하는 방식으로 제 목소리만 높인 결과다. 무엇보다 하나하나 내용을 뜯어 보면 근본적으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불가능한 목표에 대한 집착이 낳은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난맥상이 처음 노출된 건 지난해 말이다. 당시 정부는 2015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기한까지 박아 올해 추진하겠다던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 방안에 대해 단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6월(사학연금) 10월(군인연금) 개혁안 마련”에서 “개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정부는 실무진의 단순 실수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관가에선 청와대를 배후로 지목했다. 실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경제정책방향 발표 직후 사학 및 군인연금 개혁 작업이 공무원연금 개혁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여당이 청와대 손을 들어주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호응하면서 상황이 “없던 일로” 정리됐다. 기금 고갈로 재정에 부담이 되는 두 연금을 올해 안에 개혁해야 한다는 정부의 목소리가 군인들과 교사들의 반발을 우려한 청와대와 정치권의 불만에 묻힌 것이다.
연말정산 파동이 법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소급 적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여당이 주도했다. 당초 연말정산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와 청와대는 ‘덜 걷어 덜 돌려주는’ 세법 개정 내용과 ‘번 만큼 더 낸다’는 세액공제 방식의 장점을 알리는데 공을 들였지만 성난 민심을 다독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최 부총리의 긴급 기자회견도 먹히지 않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에 민감한 정치권이 들고 일어서면서 연말정산 소급 적용이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청와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감하자 정치권의 결정에 아예 손을 놓는 모양새를 취했다.
반면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는 정부가 먼저 꼬리를 내리고 여당이 발끈하는 형국이다. 3년간 준비해 26년 만에 소득 중심으로 부과 체계를 수술하는 건강보험료 개편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 마지노선인 30%가 무너지자 정부가 현 정부의 핵심지지층인 고소득층의 이탈 등 여론 악화를 의식해 속도조절에 나섰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더 많은 표를 쥔 저소득층의 반발이 극에 달하자 여당은 “정부의 정책은 신중하고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여론에 따라 여당이 연말정산 소급 적용 결정을 내린 지 일주일 만에 나온 정반대 논평이다.
학자들은 이런 일련의 사태가 ▦표를 의식해 입맛에 따라 정책을 뒤트는 여당 ▦청와대 눈치만 보며 여론에 따라 소신 없이 휘둘리는 정부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각계각층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꿈쩍하지 않는 청와대의 합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당정청이 각자 셈법에 따라 정책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훼손하고 있다”라며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모두 여당 정치인 출신으로 그만큼 권력이 청와대로 집중돼 있는 상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민들은 증세라고 느끼는데 정부가 증세를 부정하면서 무리하게 정책을 손보는 게 근본 원인이라 단순히 컨트롤타워를 보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해야 정책을 무리하게 뒤바꾸는 일도, 그에 따른 반발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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