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다. 무력에 관한 한. 골리앗을 때려 눕힌 다윗이 그랬듯, 바람 앞에 누워 끝내 꺾이지 않은 풀이 그랬듯, 약자의 무기는 창의력과 용기와 인내다. 시민 투쟁의 역사에도 무수한 다윗과 풀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스티브 크로셔의 ‘거리 민주주의-시위와 조롱의 힘’은 인간적이며 지적인 비폭력 시위가 승리한 사례를 소개한다. 생생한 시위 사진과 간결한 글이 담긴 책장을 넘기면서 ‘힘 없는 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촛불의 힘’이 무엇이었는지도.
부당한 권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화염병, 천막, 단식하는 사람은 아니다. 권력은 조롱 당하는 것에 취약하다. 권력을 조롱할뿐인 시민을 총검으로 제압하기는 어렵다. 시민을 조롱하는 것으로 응수할 수도 없다. 날카로운 조롱은 권력을 당황하게 하고, 권력이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인지를 까발린다. 저자는 웃음행동주의(래프티비즘 ㆍLaugh+Activism)라고 부른다.
독재자는 박수 갈채를 받는 것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2011년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센코가 나타날 때마다 시민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노골적 조롱이었다. 박수 치기를 반역 행위로 몰아 시민을 구금할 때마다 박수 소리가 커졌다. 수단의 잔학한 독재자 알 바시르는 2012년 반대 세력을 향해 “자기 팔꿈치를 핥고 있다”고 했다. 팔꿈치에 혀를 대는 게 어렵듯이, 자신에 대한 도전이 허황되고 어리석다고 능멸한 것이다. 시민들은 몸을 있는 대로 비틀어 팔꿈치를 핥는 사진을 찍어 뿌리는 것으로 독재자를 비웃었다.
절박하고도 끈질긴 비폭력은 결국 폭력보다 위력적이다. 2013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했다. 여성 시위대는 진압용 방패를 들고 버티는 경찰에게 대형 거울을 들이댔다. 이웃이자 동료인 시민을 짓밟는 경찰의 모습이 거울 속에 있었다. 수많은 경찰이 시위대로 전향했고, 이내 정권이 무너졌다. 1986년 필리핀에선 수녀들이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탱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비폭력을 외쳤다. 정권에 저항하다 실종된 이가 수만 명에 이른 1977년 아르헨티나. 실종자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하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대통령궁을 돌고 또 돌았다. 정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기발하고 창조적일수록 시위의 호소력과 전달력이 커진다. 더 많은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른바 연대의 힘이다. 지구 온난화로 수장될 위기에 몰린 몰디브의 모하메드 다시드 대통령은 2009년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입고 해저에서 각료 회의를 열었다. “몰디브가 살아남지 못하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는 그의 경고는 명징하게 전달됐다.
“말이 돌을 부술 것이다”(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는 말처럼, 진실을 전달하는 예술의 힘은 세다. 2014년 파키스탄의 들판에 누군가 어린 아이의 대형 사진을 펼쳤다. 모니터 속 사람을 드론으로 ‘벌레 밟아 죽이듯’ 조준 사격한 미국과 민간인 희생에 무관심한 국제사회를 향한 시위였다. “우리는 벌레가 아니다”는 간절한 호소. “회의하고 안주하는 태도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자유, 정의, 인권을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묵직한 메시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거리 민주주의-시위와 조롱의 힘’
스티브 크로셔 지음ㆍ문혜림 옮김
산지니 발행ㆍ184쪽ㆍ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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