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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곤궁한 자들에 대한 탄식, 문명의 시작이다

입력
2017.07.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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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파커의 1909년작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결박하고 간이 쪼이는 형벌의 가혹함보다는 우정의 가치를 모르는 독재자 제우스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해롤드 파커의 1909년작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결박하고 간이 쪼이는 형벌의 가혹함보다는 우정의 가치를 모르는 독재자 제우스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인류가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오늘날 만물의 영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은 아마도 불의 발견일 것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사냥한 동물을 거주지로 가지고 돌아와 식구들과 불에 구워 먹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였다. 불로 요리한 음식을 오랫동안 씹을 필요가 없어 입과 치아가 현저히 작아졌고, 음식 소화시간이 줄어들어 내장의 길이가 점점 짧아졌다. 특히 소화에 쓸 에너지를 뇌로 옮겨 뇌가 점점 커졌다. 그 뿐만 아니라 모닥불에 구운 음식을 함께 먹는 공동체인 식구(食口)라는 개념이 생기고, 식구와 함께 사냥에 관한 기술, 동물목격담, 그리고 커다란 짐승을 사냥한 무용담을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탄생하였다. 특히 자신들이 사는 주거지 입구에 불을 피워, 인류는 처음으로 사나운 동물들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잠자기 시작하였다. 불은 인간이라는 종의 탄생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불씨를 지폈다.

제우스 독재에 항거하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야누스적인 존재다. 그는 신과 인간, 야만과 문명, 혼돈과 질서, 폭력과 생각, 독재와 우정 사이에 존재하는 문지방과 같은 존재다. 그는 기존 질서에 대항한 원조 혁명가이며, 지혜의 화신이며, 변화와 진보의 상징이다. 그는 오늘날 심리학 용어를 빌리자면, 정신분열증 환자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인류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 신들을 신들답게 만들어주는 불을 몰래 인간에게 주었다. 인류도 이제 신적인 삶이 가능해졌다.

프로메테우스는 왜 인간을 도와주었을까? 그냥 도와주었다. 나중에 인간에게 도움을 받거나 숭배의 대상이 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인간들이 불쌍해서 저지른 일탈이었다. 이 행위가 하늘의 주신인 제우스에게 그렇게 큰 노여움을 야기시킬 줄은 몰랐다. 만일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적당한 벌을 내렸다면, 프로메테우스가 잘못을 시인했을 수도 있다. 제우스의 과도한 형벌이 그를 더욱더 화나게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그런 극형에 처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재적 폭력을 일삼는 제우스와 대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처럼 ‘선견지명(先見之明)’의 화신이다. 그는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로 구성된 합창대에게 자신은 제우스와 화해하여 우주에 질서와 조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는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여 제우스를 최고의 신으로 등극시켰고 여전히 제우스가 우주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메테우스는 점점 더 화가 난다. 그는 제우스와 화해하기보다 우주의 진보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강조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우주와 인류의 진보를 위해 모든 예술과 기술을 인간에게 가르쳐주었다. 우주 전체를 지배하려는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이런 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제우스,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제우스는 비극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는 최고신을 무대 위에 올린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플라톤이 주장대로, 우주 운행 원칙을 상징하는 제우스는 천상 세계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아이스킬로스가 제우스를 등장시키지 않은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첫째, 제우스 자신이 몸소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제우스의 제2의 자아라 할 수 있는 ‘힘’과 ‘폭력’이 등장한다. ‘힘’이란 의미의 ‘크라토스’와 ‘폭력’이란 의미의 ‘비아’는 바로 제우스의 화신이자 종이다. 크라토스와 비아는 협력과 우정보다는 위협과 형벌을 통해 독재를 구축한다. 제우스는 스스로 정의를 구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위협과 형벌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에게만 정의로운 신’인 제우스를 신봉하지 않는다. 제우스에게 치명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는 ‘공감(共感)’이다. 제우스는 정신적으로 아테네인들과 유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분리된 외로운 존재다. 제우스의 종들인 크라투스와 비아, 그리고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제우스처럼 건방지고 인정이 없으며 친구도 없다.

우정의 배신자, 매몰찬 제우스

제우스는 우정의 가치를 모르는 독재자다. 우정이 가져다 주는 연민, 관심, 배려, 사랑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도 경험해 본적도 없다. 제우스는 자신이 타이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로메테우스에게 형벌을 내린다. 이 형벌이 끔찍한 이유가 있다. 바위에 묶여 자신의 간을 매일 독수리에게 파먹게 하는 가혹함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와준 친구에게 가한 매정함 때문이다.

아이스킬로스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우정을 상기할만한 장면들을 집어넣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의 명령에 주저한다. 왜냐하면 그는 프로메테우스와 친구이기 때문이다. 오케아노스는 친구로서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의 명령에 순응할 것을 부탁한다. 합창대도 제우스의 명령에 따를 것을 종용하지만, 마지막엔 우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찬양한다.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인간과 맺은 우정 때문이다. 그는 제우스를 숭배하는 것보다 인간과 맺은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오만’이란 생각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만이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오래 전부터 정해진 불변의 진리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다. 프로메테우스는 비극의 마지막 부분에 우정을 강조한다. 강요에 의한 순응이란 ‘진보’의 걸림돌이다.

끝내 지혜를 쓰지 않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는 각각 ‘지혜’와 ‘권력’의 상징이다. 제우스가 타이탄들에게 승리할 수 있도록 프로메테우스가 도와준 도구는 지혜다. 그는 인류에게 불로 상징되는 지혜를 선물한다. 그러나 제우스는 자신의 친구인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제우스의 종들인 크라토스와 비아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프로메테우스를 조롱한다. 오케아노스와 합창대도 프로메테우스를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프로메테우스에게 지혜를 사용하라고 훈계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의도적으로 지혜와 권력 사이에 존재하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강조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카우카소스산 정상 바위에 사지가 묶여있지만, 임의적이며 충동적인 법을 통해 통치하며, 절대 충성을 요구하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 불의한 제우스에 대항하는 힘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런 권력을 인도하고 제어할 지혜가 필요하다. 프로메테우스가 언젠가 승리하여 제우스를 변화시켜 우주를 조화롭게 만들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형벌을 자처한 것이다.

인류 문명 진보의 상징, 프로메테우스

아이스킬로스는 ‘진보’를 신봉한다. 그는 폭력과 이기심으로 난무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우정과 이타심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류를 믿는다. 프로메테우스는 불, 그리고 그 불이 상징하는 희망을 인류에게 선물하였다. 불이 인류 기술의 원천으로 성공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희망은 인류에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상 속의 세계를 구현하는 원동력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에서 시작하여 상업과 경제적인 활동에 필요한 제도까지 차례로 선물한다. 인간의 진보는 자연의 위협적이며 파괴적이고 임의적인 힘에 대항하는 지혜의 조용한 행보다. 이 진보는 자연의 임의적인 힘을 상징하는 신들에 맞서 인간의 기술이 서서히 대치해나가는 과정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형벌을 받는 이유는 다른 신들을 인간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 문명의 진보, 위대한 인간의 지혜를 신봉한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인간문명을 황금시대에서 청동시대로 퇴보한다고 노래했다. 아이스킬로스는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는 어두운 동굴 안에서 자연의 폭력에 떨던 보잘것없는 동물이 지혜를 통해, 생존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예술, 종교, 광산, 상업 등을 통해 진보하는 희망을 노래하였다. 그는 청동에서 시작하여, 철, 은, 그리고 황금으로 진보하는 인류문명을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보았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와 대화를 나눈다.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제우스는 그런 말을 알지 못합니다.” (979-980행) 프로메테우스가 ‘아, 슬프도다!’라고 외친 그리스 단어는 ‘오모이(omoi)’다. 이 단어는 친구나 낯선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다. 헤르메스는 제우스는 그런 단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스 문명의 씨앗과 진보는 바로 이 단어, ‘오모이’에서 출발했다. 나는 ‘오모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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