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허가받은 필러 원료는 3개월~1년 효과 내고 인체 흡수
인체 흡수 안 되는 불법 시술로 시력손실ㆍ피부괴사 환자 증가
일부 의사들 필러 배우려고 성형병원서 '그림자 의사' 자처
"시술 성공여부 솔직히 운"...식약처 안전대책 전무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던 김모(산부인과 전문의)씨는 저출산 등으로 병원 운영이 어렵게 되자 병원을 접었다. 그는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필러 시술을 배운 후 간판을 산부인과에서 ‘ㅇㅇㅇ여성의원’으로 바꿔 달았다. 가슴성형, 레이저흉터제거 등 성형시술도 배웠지만 시술이 간편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필러시술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요즘 넘쳐나는 환자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7일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한국망막학회가 올 6월 미국 의학협회지에 게재한 논문을 인용해 “필러 시술을 받고 안동맥이 폐쇄돼 시력을 잃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은 환자가 국내에만 40명이 넘는다”고 문제 제기했다.
수술 않고 예뻐지려다 수술대 올라 ‘후회’
깊게 팬 주름이나 푹 꺼진 부위 등에 피부와 유사한 성분을 주사해 볼륨감을 만들어주는 ‘필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에 따른 문제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시술. 김선웅 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현재 1,000억원대 필러시장보다 큰 규모의 불법시장이 존재하고 있다”며 “한번 시술로 영구적으로 볼륨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유혹에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문제해결이 시급하다”고 했다.
국내에서 허가 받은 필러의 주 원료는 인공눈물과 흡사한 히알루론산. 히알루론산 성분 필러는 히알루론산 입자크기에 따라 3개월에서 1년까지 효과를 낸 뒤 인체에 흡수된다. 하지만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 필러를 사용했다가 부작용이 생겼거나 시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술을 통해 제거해야 된다. 하영인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 석회질 성분의 필러를 맞고 부작용이 생기면 수술로 제거할 수밖에 없다”며 “한번 시술로 영구적으로 볼륨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했다. 하 교수는 “일부 미용실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출신이 불법으로 필러를 시술하는데 이들은 필러 성분을 알려주지 않고 시술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필러시술 배우려 대형 성형병원서 섀도 닥터 노릇
필러는 ‘그림자 의사(섀도 닥터)’를 양산하는 주범 노릇을 하고 있다. 성형외과, 피부과 전문의들은 “개원에 앞서 대형 성형외과에 취직해 1~2년 동안 필러 등 성형시술을 배우는 이가 많다”며 “이들이 형편없는 월급을 받으면서 대형 성형외과에서 일하는 것은 필러 등 성형시술을 배워 개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탄을 받고 있는 서울 강남 G성형외과의 ‘섀도 닥터’ 시술 문제도 결국 개원 전 다양한 성형시술을 배우려고 이 병원에 들어와 불법인줄 알면서도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의사도 적지 않다. 하 교수는 “과거 성형외과 전문의가 의사들을 상대로 돈 받고 성형시술을 가르치다 적발돼 대한성형외과학회에서 영구 제명되기도 했다”고 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필러 시술을 배워 많은 환자를 시술한 일반의(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 중 시간당 200만원의 강의료를 받고 의사를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용량 속여 이익 챙기고, 시술결과는 ‘운’
필러 수요가 나이에 관계없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돈벌이를 위해 술수를 사용하는 의사들도 문제다. 대부분의 필러 용량은 1㏄로 이마에 시술할 경우 4cc 정도, 턱은 2㏄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눈 밑 시술 등은 0.3~05㏄ 정도면 충분한데 일부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1㏄ 가격을 받고 있다. 필러 시술을 하고 있는 한 개원의는 “필러 1㏄를 3등분 해 사용 한다”고 했다. 물론 가격은 1㏄을 받는다. 개원가에서 필러 1회 시술에 드는 비용은 15만~20만원으로 필러를 나눠 쓰면 그만큼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의 시술능력을 높이기 위한 실험대상으로 전락되는 것도 문제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필러 시술 후 부작용 등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 자신이 원하는 부위뿐 아니라 서비스로 필러를 맞아 문제가 생긴 이가 적지 않다”며 “이러한 환자들이 맞은 필러는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 필러가 대부분”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하 교수는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가 필러를 잘못 시술해 필러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시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며 “코 끝 시술도 잘못하면 혈관이 막혀 코끝이 괴사될 수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일반의 중에서도 필러 시술을 잘하는 이가 많지만 돈벌이를 위해 무턱대고 시술하는 이도 적지 않다”며 “필러가 어떤 성분인지, 시술 후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으면 제거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의사와 상담한 후 필러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 피부과 원장은 “필러 시술로 인한 부작용은 거의 없지만 시술 성공여부는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 다른 사람보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싶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풍토도 필러 시장의 판을 키우고 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성형이라는 너무나 중요한 결정을 위해 ‘깊이 생각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한 다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탕이나 껌 등 ‘별 생각없이’ 고르는 상품을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유 교수는 “성형은 부작용이 생기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깊이 생각하고’ 고르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대학을 앞둔 여고생이 성형수술 도중 뇌사상태에 빠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 또래 여고생들이 그저 웃고 떠들면서 성형수술 얘기를 할 만큼 성형은 가벼운 일상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는 “외모에 집착하고 늙어 보이지 않게 노력할 수밖에 없는 ‘안티에이징’ 사회가 여성은 물론 남성들까지도 성형에 매달리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환 중앙의료원 교수는 “필러는 계절에 관계없이, 수술대에 눕지 않아도 아름다운 용모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계속 맞고 싶어지는 심리적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며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외모를 가꿔야 하는 외모지상주의와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얻기 바라는 일부 의사, 이를 상품화한 제약업체가 필러 시장을 변질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필러 눈 주위, 미간 부위 사용금지…현장선 ‘금시초문’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기현상도 문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에서 허가된 필러제품의 경우 2008년 12월부터 눈 주위 및 미간부위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눈 주위와 미간부위 성형에 필러를 사용하지 않는 병원은 전무하다. 필러 시술 후 안동맥이 폐쇄돼 시력을 잃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식약처는 이들 부위에 필러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법적 근거만을 앞세우며 사태파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눈 주위와 미간부위에 필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필러를 시술하고 있는 모든 병원들이 불법을 저지른 셈”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는 “필러시술 부작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식약처가 안전한 필러 사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필러시술 유의점] 필러 제거 가능한지 꼭 물어보세요!
필러 시술 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필러 시술경험이 많은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 필러 시술은 성형외과, 피부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도 가능하다.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해서 무조건 필러 시술에 능한 것도 아니다. 필러 시술에 경험이 많은 의사를 찾으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러 시술 전 반드시 필러 성분이 어떤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술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필러를 제거할 수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만약 의사가 이러한 설명 없이 필러 시술을 권유한다면 시술을 유보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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