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학생 한 명은 (3ㄱ)과 같은 예를 ‘삼 기역’이 아니라 ‘삼 그’라고 읽는다. 물론 (6ㄴ)은 ‘육 느’, (12ㄷ)은 ‘십이 드’와 같이 읽는다.
그는 중국 흑룡강성 출신 조선족 유학생이다. 가족 모두 조선어를 사용하는데다가, 고등학교까지 조선족 학교를 다녔으니 한국어는 모국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한국어에 서툴러서 ‘삼 그’라고 읽는 것은 아니다.
이 학생이 나고 자란 흑룡강성은 일찍부터 북한 어문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북한의 한글 자음자 이름은 남한과 다르다. 우리는 ‘ㄱ 기역, ㄴ 니은, ㄷ 디귿,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옷, ···’으로 부르지만, 북한은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이라고 한다.
둘 모두 ‘이으’를 기본으로 하여 해당 자음자를 초성과 종성에 붙이는 방식인데, 우리의 경우 ‘기역, 디귿, 시옷’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한글 맞춤법 개정 당시 ‘기윽, 디읃, 시읏’처럼 규칙적으로 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이와 달리 북한은 처음부터 ‘기윽, 디읃, 시읏’으로 하여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이마저도 어렵다 하여 ‘그, 느, 드, 르, 므, 브, 스, ···’와 같은 또 하나의 이름을 정하였다. 즉 북한의 한글 자음자 이름은 두 가지인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한글 자모 이름은 중국의 동포 사회에 그대로 이어졌다. 앞의 학생은 학창 시절 내내 ‘기윽, 니은, 디읃’, 또는 ‘그, 느, 드’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이름이 이제 한국의 남쪽 대학의 한 강의실에 등장한 것인데, 글자 이름 하나에서 새삼 분단의 역사가 느껴진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