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지원받는 후티 반군 공격에
사우디 아랍동맹군이 물자 봉쇄
50만명 감염 콜레라 약 못 옮기고
기근 겹쳐 민간인들 목숨 위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아랍 동맹군이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에 대한 보복으로 예멘 전역에 봉쇄 조치를 취해 인도주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역대 최악의 콜레라 사태로 고통 받고 있는 예멘 국민을 구호 손길도 닿지 않게 고립시켜 대규모 인도주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7일(현지시간) 사우디 항구에서 콜레라 예방약을 실은 예멘행 선박이 입출항 허가를 거부당했다고 발표했다. 욜란다 재퀴멧 국제적십자위원회 대변인은 다음주 예멘 서남단의 아덴항으로 향할 예정인 당뇨병 치료용 인슐린 5만병의 허가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재퀴멧 대변인은 “현재 예멘을 드나드는 어떠한 물자이동도 없다”며 봉쇄 상태를 확인한 후 “국가가 매우 취약한 상태라 조금의 수입 제한 조치만 추가돼도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멘이 순식간에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것은 전날 사우디 주도 동맹군이 예멘 전역을 봉쇄하면서다. 앞서 4일 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 인근의 킹칼리드국제공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뒤, 이틀만인 6일 동맹군은 미사일 제공 및 발사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예멘의 모든 육지와 상공, 항구를 임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며 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국제사회의 비난을 고려해 “인도주의 물자 공급과 구호 활동가의 통행을 지속하도록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발표 직후 구호 움직임까지 전격 차단한 것이다.
주민 수십만명이 콜레라에 감염되는 등 내전 피해가 극심한 예멘은 비상 상황에 처했다. 올해 8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예멘의 콜레라 감염자가 50만명(4월 기준)이 넘어 지난 50년간 전세계 콜레라 피해 중 단일 국가로서 최악의 수준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현재 예멘 내 기근에 시달리는 인구만 700만여명에, 긴급 약품 공급이 차단될 경우 약 90만명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라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밝혔다.
수십만명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있지만 당사자인 후티 반군 역시 보복 예고로 맞대응해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반군 측은 7일 성명을 통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의 모든 공항과 항구, 국경지대, 이 밖의 중요한 시설들은 우리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며 확전을 공언했다.
민간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예멘을 무대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사우디와 이란 양측에 대한 비난 모두 커지고 있다. 대(對)이란 강경파이자 2015년 예멘 내전 개입을 결정한 모하메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가 권력의 정점에 오를수록 충돌이 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이 같은 책임론을 키우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인도주의 손길을 막고 있는 후티 반군과 아랍 동맹군을 함께 비난하며 “봉쇄 목적이 오직 민간인을 굶주리게 하는 것이라면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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