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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2.23 18:33
수정 : 2017.02.24 09:56

[황영식의 세상만사] 집단적 분노조절장애

등록 : 2017.02.23 18:33
수정 : 2017.02.24 09:56

분노는 변화를 촉발할 수 있어도

절제 없이 발전을 가져오진 못해

‘촛불’과 ‘태극기’ 다 내려놓을 때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22일 헌재가 밝혔듯, 27일 변론이 종결되면 이정미 재판관(소장 권한대행)의 임기가 끝나는 3월13일 전에는 결정이 선고될 전망이다.

그 동안의 헌재 심리 내용에 비추어 인용(認容) 쪽으로 예상이 기울지만, 8인의 재판관 가운데 3인만 인용을 주저할 경우 기각되고 만다는 점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다.

헌재가 탄핵결정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승복하겠다는 정치권의 구두 다짐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보려 해도 쉽지 않다. 애초에 13일의 여야 4당 원내대표 합의는 저마다의 당론을 결집한 결과인 분명한 승복 합의라기보다는 각각 그런 방향으로 당론을 모아가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그리고는 열흘이 지나도록 확실한 승복 선언은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느슨한 합의가 국회의원을 구속할 수는 있어도, 머잖아 본격화할 대선정국에서 실질적으로 당론을 좌우할 원외 대선주자를 얽매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당장 야당의 유력 주자 가운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각 결정에도 헌재 판단 존중할 것”이라고 원칙론을 확인하면서도 민심 반발 가능성을 언급하며 은근한 공감을 표했다. 안희정 충남 지사는 어정쩡한 자세에 머물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예 “기각 결정에는 촛불을 들고 싸울 것”이라고 불복 다짐까지 내놓았다. 하기야 당사자인 박 대통령조차 분명한 승복 의지를 밝힌 바 없다. 헌법 절차에 따른 탄핵심판에 승복하고 말고가 어디 있느냐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했던 셈이다..

급기야 22일 헌재의 16차 변론에서 박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정면충돌을 불러 “서울 아스팔트가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고 “내전으로 100만 명 이상이 피를 흘린 영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섬뜩한 저주까지 내뱉었다. 재판정에서 누구보다 냉정해야 할 변호사가 극도의 흥분상태를 드러냈다. 재판부와 여론에 대한 그의 분노가 그만큼 지독하고도 조절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의 흥분상태는 “선동 전략” 등의 사후 평가를 무색하게 할 정도였지만, 어차피 그런 재료로 활용될 터여서 탄핵심판 이후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도 남는다.

실은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도 그런 우려를 자극해왔다. 말이야 이 성남시장처럼 독하지 않지만, 어차피 정치적 무게가 달라서 함께 비교하기 어렵다. 최근 안 충남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에 대해 그는 “분노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거나 “분노가 우리나라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승화돼야 한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국민적 분노와 낙담이 아니고서는 촛불집회나 탄핵정국은 없었다. 그런데 틀린 말이다. 낙담한 국민을 일으켜 세워 광화문 광장에 서게 한 것은 분노의 힘이지만, 촛불집회가 뜨거운 분노의 표출에 그쳤다면 탄핵정국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촛불혁명’은 프랑스혁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란 역사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분노였지만, 반복ㆍ지속적 분노의 폭주는 이후 숱한 반동과 공포, 혼란을 불렀다. 혁명을 완성시켜 역사발전을 이룬 것은 오히려 분노의 절제였다. 그런 역사적 교훈에 따라 촛불집회는 일찌감치 분노조절에 성공했다.

정상적 개인에게서 분노의 감정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지속력이 결코 길지 않다. 희로애락으로 들뜬 ‘이상 상태’를 서둘러 ‘정상상태’로 되돌리려는 두뇌작용 때문이다. 이를 다시 길어 올리려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분노조절 장애 증상이다. 감정의 진폭이 유난하고, 지속성도 강하다. 환자 스스로나 주위에 불행을 안긴다. 집단이라고 다를 리 없다. 집단적 분노조절 장애는 공동체를 위협한다..

정치권이 잦아든 분노를 애써 부추기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도 촛불과 태극기를 내려놓고 헌재 결정을 기다려 보길 권한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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