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설] 네 살배기가 월 임대수익 1,000만원을 받는 나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설] 네 살배기가 월 임대수익 1,000만원을 받는 나라

입력
2016.01.25 20:00
0 0

국세청의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거액의 부동산을 물려받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대상자가 된 미성년자가 2014년 기준 154명에 이른다. 이들이 내는 세액은 3억 2,900만원에 달했다. 4살짜리가 5층짜리 임대주택의 주인으로 등록되어 월 임대수익이 1,000만원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3살짜리가 서울 강남에 20억대 아파트를 소유하기도 했다. 부동산을 포함, 예금이나 주식을 증여 받은 미성년자는 5,554명이고, 이 중 10세 미만도 1,873명이나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14년 미성년자가 증여 받은 예금액은 7조4,000억원을 넘었다. 대기업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미성년자 주식 갑부들도 많다. 지난해 9월 현재 15개 대기업 집단에서 미성년 친족 39명이 보유한 주식은 1,000억원 가까이 됐다. 1인당 25억원에 이르는 액수다. 최근 주식가치가 크게 오른 한미약품의 경우 임성기 회장이 2012년을 전후로 4~9세인 손주 7명에게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60만주를 증여했다. 당시 4,000원 정도였던 주식 가격이 지금은 7만원을 넘었다.

미성년자에게 부동산이나 주식을 증여하는 것은 통상 절세를 위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미리 조금씩 물려주면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주식은 증여 이후 상승분에 관한 과세 체계가 모호해 편법상속의 통로가 되고 있다. 대개 부동산이나 주식의 하락 시기에 증여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증여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없는 일반 시민들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증여와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재벌기업의 내부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비상장 주식회사의 가치를 높여 2ㆍ 3세가 다시 재벌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이처럼 부의 대물림 현상이 고착되면, 우리사회는 출발점이 불공정한 사회로 인식되며 역동성을 잃고 만다. 열심히 노력하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사라질 때 청년층은 열심히 일할 의욕이 꺾이게 마련이다.

부의 세습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 손녀에게까지 거액의 부를 대물림 하는 것은 사회정의와 공정성을 해치는 요인이 되기 쉽다. 상속ㆍ증여 제도의 허점은 없는지, 개정할 부분이 없는지 세정 당국이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한다. 빌 게이츠 등 존경 받는 세계적 부호들이 주장해 왔듯, 상속ㆍ증여세율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사회적 논의에 붙일 필요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