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서부 퍼스에 사는 대학생 에드워드(22)는 친구 소개로 만난 네 살 연상의 댄스 강사 첼시(26ㆍ여)와 2년 반째 교제 중이다. 지난달 19일 기말고사를 끝낸 에드워드는 모처럼 첼시와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즐겼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50호주달러ㆍ1호주달러는 854.39원)를 한 뒤 영화(25호주달러)를 보고 분위기 좋은 바에서 칵테일(40호주달러)을 마시며 에드워드의 여름방학 시작을 축하했다. 두 사람이 이날 지출한 비용은 한화로 약 9만8,255원.
#일본 규슈(九州) 벳푸(別府)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나카시마 세이야(21)와 야마시타 사야(20ㆍ여)는 교환학생을 돕는 동아리 모임에서 만나 7개월째 사귀고 있다. 둘은 이달 11일 함께 초밥으로 점심(2,500엔ㆍ100엔은 943.95원)을 먹은 뒤 영화 ‘매드맥스’를 관람(3,000엔)했다. 후식은 따로 없었지만 식료품점에서 식재료(1,500엔)를 구입해 세이야의 집에서 저녁을 지어 먹은 것으로 데이트를 마무리 했다. 한화로 모두 6만6,077원이 들었다.
#경희대에 재학중인 유미래(22ㆍ여)씨는 의경으로 군복무 중인 한세훈(22)씨와 1년 8개월째 만나고 있다. 유씨는 이달 11일 외출을 나온 한씨와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봤다. 티켓 구매비는 군인인 한씨 덕분에 할인을 받아 1만원만 지출했다. 아르바이트로 최근 월급을 받은 유씨는 모처럼 맛있는 것을 먹자며 한식 뷔페에서 한 사람당 1만 9,900원을 내고 밥을 먹었다. 영화 관람 후 카페에서 마신 커피 두 잔(1만 2,800원)을 포함해 이날 6만2,700원을 썼다.
비슷한 코스로 데이트를 즐긴 세 나라의 연인들. 하지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3국 젊은이들이 투자하는 노동시간만 해도 천차만별이다. 한국ㆍ일본에 비해 다소 많은 10만원 가까운 데이트 비용을 지출한 호주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최저시급제를 시행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2013년 기준으로 3위다. 현재 호주의 최저시급은 17.29호주달러(1만4,772원)로 에드워드-첼시 커플처럼 데이트를 하려면 6.6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웃 일본의 20대는 호주보다 비용은 적었지만 평균 최저시급이 780엔(7,362원)에 불과해 8.97시간을 노동해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세 나라 중 가장 적은 데이트 비용을 쓴 한국은 어떨까. 현행 최저시급(5,580원)을 적용했을 때 한국 젊은이들은 무려 11.22시간을 노동에 투자해야 한다. 호주의 두 배, 일본과 비교해도 2시간 이상 길다. 8시간으로 제한된 근로기준법의 일일 노동시간에 견줘 봐도 하루를 꼬박 일하고 반나절을 더 아르바이트로 보내야 하는 셈이다. 사랑만이 아니라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까지 따지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물론 물가수준이 다른 3국의 최저시급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각국 물가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인용되는 ‘빅맥지수(해당 국가의 빅맥 햄버거 가격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지수가 높을수록 물가가 높은 것을 의미)’를 들여다 보면 한국과 호주의 괴리는 그리 크지 않다. 16일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가 44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빅맥지수에 따르면 미국의 빅맥 가격이 4.79달러이고 호주는 3.92달러, 한국은 3.76달러로 나타났다. 일본은 2.99달러였다.
굳이 물가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최저시급에 따라 각국 젊은이들이 영위하는 생활 수준은 극명하게 다르다. 에드워드와 유미래씨 모두 주거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교 때부터 패밀리 레스토랑, 식당, 구청 등에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던 유씨는 최저시급 이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지금은 서울 회기동의 한 커피숍에서 5,580원을 받으며 평일 4시간을 일하고 있다. 유씨가 주휴수당을 포함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월 50만~55만원. 유씨는 “이 정도 시급으로 식사, 교재비를 포함해 데이트 등 용돈까지 감당하려면 버거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에드워드는 여유가 넘친다. 에드워드는 방학을 이용해 하루 8시간씩 탄산음료를 박스에 담아 트럭에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단순 업무임에도 그는 시간당 25.5호주 달러(2만1,786원)를 번다. 한 달이면 350만원이 모인다. 에드워드는 “가끔 데이트를 즐기고 저축도 조금은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돈을 모아 여자친구와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해외에서 높은 노동 가치를 피부로 느낀 한국의 20대는 우리나라의 ‘최저시급 노동’을 거부한다. 이병일(24)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호주 시드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며 시간당 1만2,000~1만5,000원을 받았다. 하루 6시간을 일해 월 200만원 가량을 벌었고, 생활비를 제외하고 매달 100만원을 저축했다. 틈틈이 여행까지 즐겼는데도 귀국 했을 때 그의 손에는 1,000만원이 남아 있었다. 이씨는 “3년 전 고향인 부산의 한 식당에서 최저시급을 받고 하루 5시간씩 일했지만 들어오는 돈은 50여만원이 전부였다”며 “이런 낮은 시급을 받고 일하느니 차라리 공부에 매진하는 게 낫겠다 싶어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초 전역 후 일본 도쿄의 라면 가게에서 ‘서빙 알바’를 했던 정민철(29)씨는 “당시 시간당 1,000엔을 받아 엔화가치가 낮을 때도 한화로 치면 9,000원을 벌었지만, 이듬해 귀국하니 시급이 반토막 이하로 줄어 알바는 접고 학점 올리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달 9일 2016년 최저시급을 450원 인상된 6,030원에 의결했다. 내년에도 한국의 유미래씨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여전히 10시간 넘게 일해야 한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같은 시간을 일해도 선진국 젊은이들과 삶의 방식에서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우리 최저시급제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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