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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희생…”분노넘어 절망(대구 가스폭발 현장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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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희생…”분노넘어 절망(대구 가스폭발 현장 이모저모)

입력
1995.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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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책 국민기만용이었나” 질책/피범벅사체… 구겨진 차…차파편 우박처럼 “전쟁터 방불”/현장·병원 가족찾는 울부짖음

【특별취재반】 어처구니없는 대형참사였다. 화창했던 봄날 아침출근길이 졸지에 처참한 지옥으로 변했다. 

 파괴된 공사장과 잔해속에서는  이날 하오 늦게까지도 사망자가 계속 발견되고 현장에는 사망자의 가족, 친지들의 울부짖음과 실종가족을 찾아나선 시민들로 아수라장을 이뤘다.

 대구 지하철공사장 폭발사고는  국내 최대규모의 가스폭발사건이자 지하철공사장에서 일어난 사고로도 사상 최대이다. 

▷사고현장◁

 상인동 영남중고앞 네거리는 복공판에 깔린 시민들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타버린 희생자들의 유해,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차량들, 학생들의 책가방들이 뒤엉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구조를 외치는 부상자들의 비명이 어지러운 가운데 피로 뒤범벅 된채 처참하게 찢긴 사체들이 곳곳에서  발견돼 구조대원들조차 끔찍한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

 폭발 위력은 엄청났다. 무게 7백50㎏의 복공판 2천여개가 폭발순간 50여를 솟구쳐올라 여기저기 나뒹굴었고 1천여개는 찌그러지거나 파열돼버렸다. 인근 신일학원 6층건물 지붕위에는 10여개의 철제빔이 날아가 얹혀있었고 이 학원과 근처 건물의 유리가 모두 깨졌다. 폭발로 지하공사장으로 떨어진 차량들은 복공판에 맞거나 충격으로 납작하게 우그러졌고 차량안은 부상자들의 신음과 피로 가득했다.

▷사고순간◁

 화원유원지로 소풍가기위해 네거리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화상을 입은 신민호(신민호·14·학산중 2년)군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기둥과 복공판들이 하늘로 솟구치면서 위를 지나던 차량들도 솟구쳐 올라 지하로 곤두박질쳤고 파편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며 몸서리쳤다.

▷구조작업◁

 사고가 나자 현장에는 대구시내 소방차 30여대와 구급차 1백3대, 크레인등 중장비 20여대, 경찰 소방대원 민방위대원 군인등 2천여명이 중상자 구조와 사체발굴작업을 폈다.

 구조반은 우선 부상자들을 먼저 보훈병원등 시내 병원들로 후송한뒤 사체들을 수습했다. 그러나 가스가 계속 누출되는데다 직경 5백㎜ 대형상수도관이 터지면서 물이 지하에 1이상 차는 바람에 접근이 어려워 수습이 늦어졌다. 

▷병원표정◁

 희생자와 부상자들이 분산수용된 보훈병원등 12개 병원에는 가족들이 몰려들어 시신을 확인하고 울부짖었다. 중·고생 10명의 시체가 안치된 불교병원에는 비보를 전해 듣고 찾아온 부모들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숨진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을 잃은 비통에 빠졌다.

 이날 등교길에 숨진 안성준(15·영남중 2)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책가방을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려 영안실 관계자들도 일손을 놓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단전단수◁

 도시가스 폭발사고로 인근 지역에 단전 단수와 함께 도시가스등이 완전 중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사고 현장 주변을 지나는 직경 3백50㎜ 수도관이 완전 절단되고 8백㎜ 수도관에 직경 30∼40㎜정도의 구멍이 뚫려 인근 달서구 월배 2,4,6동 지역 1만5천세대에 수돗물 공급이 끊겨, 6만여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있다.

 단수지역의 수돗물공급은 사고 수도관의 수리가 공사장 현장복구가 끝난 뒤 진행될 것으로 보여 4∼5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어처구니없는 사고 시민반응/“이젠 불안해 집에도 못있겠다”

 국민은 이제 분노하고 항의할 기력조차 잃었다. 대형사고때마다 격앙된 목소리로 대책을 요구하고 총체적 부실사회를 개탄했던 사람들도 이번 참사 앞에서는 말문을 닫았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연이은 테러사건에 접하며 그나마 그같은 악성의 사회적 갈등에서는 벗어나 있음을 자위하던 국민들은 그대신 예측할수 없는 일상의 위험속에 놓여있는 스스로를 새삼 깨닫고 몸서리를 치고 있다.

 끔찍한 사고가 터진뒤면 으레 벌어지는 정부당국자들의 법석과 요란한 「말장난」에 눈길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이는 국민은 더이상 없다. 서해페리호 사건뒤에도 똑같은 원인으로 충주호유람선 참극이 빚어졌고 수없는 「부실근절」다짐속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다. 아현동 가스폭발사고때 온나라의 위험요소를 총점검할듯한 기세로 대책을 발표한 것이 불과 4개월 전이다.

 회사원 김경렬(27)씨는 『지하철 공사장등 공사현장 부근을 지날때마다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집에 가만히 있는 것조차 불안하다』고 머리를 저었다. 학생 박수현(26·여·연세대 국문과 석사과정)씨는 『대형사고가 워낙 많이 나 주검에 대해 무감각해질 정도』라며 『지하철로 통학을 하는데 한강다리를 건널때마다 지하철안의 승객들이 불안해 수근대는 것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또다른 회사원 길기수(29)씨는 『황당하다. 너무 사고가 빈발해 이러다간 국민 모두가 사고불감증에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어처구니없어 했고 김미은(38·여 ·정육점운영)씨는 『대구 폭발사고를 듣고 지난번 아현동 사고때 목격한 거대한 불기둥과 엄청난 폭발음이 상기돼 불안감에 떨었다』고 끔찍스러워 했다. 다른 많은 시민들은 아예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허탈감을 드러내 보였다.

 국민들은 정부당국에 대해서는 『그동안 즐비하게 내놓았던 대책이란 것들은 단지 여론무마용의 국민기만책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났다』고 극도의 불신과 저항감을 표시했다.

 계명대 윤영진 행정학과교수는 『정부가 사고가 날때마다 재발방지를 다짐하며 세우겠다던 대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며 『이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얼마나 더 터지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돼야 하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개탄했다. 무고한 동료와 제자들을 잃은 영남중 정용수(29)교사는 『대구지하철은 안전하다고 앵무새처럼 말해온 관계당국을 더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학생 김재식(24·경북대)군은 『사고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지하철 공사장에서 대형참사가 빚어진 것은 당국과 시공업체 모두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관련자를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없이 속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결국 정부당국자에게 이번에야 말로 구호만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와함께 이런 참극이 연이어 일어나는데는 정부당국만이 아닌 우리 모두도 책임을 면할수 없다는 자성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병찬변호사는 『우리 국민 모두가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의식을 갖는데서부터 근본적인 사회적 대책이 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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