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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후보 1번 ‘치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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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후보 1번 ‘치킨계’입니다”

입력
2016.03.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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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2시 서울 서촌의 한 가게 앞에서 열린 '맘상모당'의 창당대회인 '출당! 맘상모당!'에서 참가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위은지 인턴기자
16일 오후 2시 서울 서촌의 한 가게 앞에서 열린 '맘상모당'의 창당대회인 '출당! 맘상모당!'에서 참가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위은지 인턴기자

“치킨계, 생선구이계, 참치계, 곱창계, 의류업계, 고시원계, 꼬치계 등 분야별 비례대표를 선정합니다. 치킨계는 후보가 많아 경선이 진행될 예정입니다.”(정태환 맘상모 운영위원장)

1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통영생선구이’ 식당 앞에서 ‘출당! 맘상모당!’이라는 창당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임대인의 횡포로 쫓겨나는 상인들의 현실을 알리고, 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창당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폐지(한)당, 흙수저당, 거지당 등 4ㆍ13총선을 앞두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군소정당가운데 특이한 이름을 지닌 정당이 하나 추가된 것이다. 다만 이 정당에는 조금 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설립 2년 만에 ‘300명에서 3,000명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2013년으로 거슬러간다. 같은 해 5월 힙합그룹 리쌍이 자신들이 보유한 서울의 가로수길 건물에서 세입자를 내쫓은 일이 화제가 됐다. 갑을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이 사연은 적지 않은 공분을 샀고, 비슷한 처지의 세입자들이 모여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후 조직을 체계화하고 법적 지위를 갖출 필요성을 느낀 이들은 2014년 2월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을 정식 창립한다.

2년 사이 맘상모는 세입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300명 수준이던 온라인 회원은 10배가 늘어난 3,000여명에 달하고, 이 중 500명이 정회원으로 가입해 활동 중이다.

작년 12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맘상모가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임차상인의 권리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소개하며 “오죽 임차상인으로서 설움과 고통이 컸으면 이런 단체까지 만들었겠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쳐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쳐

6년 만에 또다시..이리카페의 눈물

함께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세입자들 처지가 악화하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리카페’가 겪은 일은 대표적인 사례다. 2004년 홍대와 신촌 중간쯤의 황량한 거리에 문을 연 이 카페는 작품 전시와 인디밴드 공연이 함께 이뤄지는 문화공간으로 주목을 받았다.

홍대 앞 카페 문화의 원조 격인 이 곳이 명소로 부상하자 건물주는 해마다 임대료를 올리더니 급기야 “조카가 카페를 하고 싶어한다”며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이리카페는 결국 2009년 홍대의 외곽인 상수동으로 자리를 옮겨 문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6년 만에 똑같은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태다. 상수동 인근이 홍대 문화의 거점으로 새로 부상하자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35만원이었던 임대료가 하루 아침에 385만원으로 훌쩍 오른 것이다. 카페의 운영진들은 몇 달 째 월급도 챙기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리카페 운영진과 단골 손님들이 모여 임대료 상승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리카페 페이스북.
지난달 29일 이리카페 운영진과 단골 손님들이 모여 임대료 상승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리카페 페이스북.

상가법 개정에도 확산되는 ‘젠트리피케이션’

이리카페는 상권을 살려 놓은 가게들이 쫓겨날 처지에 놓이는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의 확산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홍대 앞 거리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몇 년 사이 연남동, 합정, 상수, 망원 등으로 거침없이 확산돼 왔다. 홍대뿐 아니라 이태원과 경리단길, 해방촌, 삼청동, 가로수길, 서촌, 성수동(서울숲길 주변) 등 소위 ‘뜬다’ 싶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날 맘상모당 창당대회가 열린 서촌의 통영생선구이 역시 이런 이유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난해 5월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 개정안이 시행됐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상가법 개정은 2014년 맘상모가 출범하며 내건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다.

개정안에는 점포 규모에 상관없이 최소 5년 간(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은 쫓겨나지 않고 장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상인이 일군 영업가치 중 일부인 권리금을 임대인이 빼앗을 수 없도록 명문화하는 등 임차인들의 권리를 개선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됐다.

하지만 재계약 시 임대료 상승률 상한(9%)의 적용 대상을 환산보증금(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을 합한 금액으로 ‘월세×100+임대보증금’으로 산출) 기준 4억원(서울)으로 제한하는 등 제도적 허점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평균 환산보증금은 7억5,000만원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가게들은 재계약 시 임대료를 건물주 마음대로 올려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상인들은 또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현행 최소 5년에서 최소 10년으로 연장하고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세입자에 대한 보호조항도 포함돼야 실질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갑자기 오른 임대료를 이기지 못하고 최근 폐점하거나 문을 닫을 위기에 몰린 홍대 인근의 문화 공간들

우리는 가상 정당이지만.. “정치인들 제몫 해주길”

맘상모가 ‘창당’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 동안 상가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첫 번째 회기에 이를 공론화시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총선을 앞둔 한 달 여 동안 집중적인 홍보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우선 피해상인을 중심으로 업종별 비례대표들을 선정한다. 비례대표들은 해당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 선민 맘상모 조직국장은 “치킨계 비례대표의 경우 전국의 치킨집을 돌며 어려운 처지에 처한 상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에는 서울 상수동 일대에서 ‘젠트리가 시작됐다. 모이자! 맘상모당! 바꾸자! 상가법!’이란 이름으로 합동유세와 정책토론회도 연다. 이달 말에는 악덕 건물주한테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임차상인들과 법률자문단 등이 참여하는 정책 토론회를 국회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4ㆍ13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맘상모당에 투표를 할 수는 없다. 맘상모당은 정식 정당이 아닌 가상 정당이기 때문이다. 선민 조직국장은 “정치인들이 제 몫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활동을 계획하게 됐다”며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면 정식 정당으로 등록하고 진짜 비례대표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투표는 못 해도 가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맘상모당은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4월 13일까지 당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13일 저녁 서울 홍대 앞 공연장 ‘롤링홀’에서 열린 홍대 앞 공연장 지키기 프로젝트 콘서트의 포스터. 맘상모가 임대료 급등으로 줄줄이 문을 닫는 라이브클럽을 살리기 위한 취지로 주최한 이 공연에는 체리필터와 슈퍼키드, 아름다운 밤 등 인디밴드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앞으로 한두 달에 한 차례씩 같은 취지의 콘서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13일 저녁 서울 홍대 앞 공연장 ‘롤링홀’에서 열린 홍대 앞 공연장 지키기 프로젝트 콘서트의 포스터. 맘상모가 임대료 급등으로 줄줄이 문을 닫는 라이브클럽을 살리기 위한 취지로 주최한 이 공연에는 체리필터와 슈퍼키드, 아름다운 밤 등 인디밴드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앞으로 한두 달에 한 차례씩 같은 취지의 콘서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위은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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