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체 넥슨이 이번에는 메갈리아 논란에 휘말렸다.
넥슨이 게임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여성 성우가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 지지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교체해 논란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은 찬반 여론이 갈려 곳곳에서 대립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논란을 촉발한 한 장의 티셔츠
사건은 지난 18일 KBS 37기 성우 김자연씨가 트위터에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여성들은 왕자가 필요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영문이 새겨진 티셔츠는 메갈리아에서 자신들의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한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비용을 마련하려고 개당 2만원에 파는 물건이다. 당시 여성 네티즌들은 페이스북 코리아가 ‘김치녀’ 등 여성 혐오 페이지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신고를 해도 삭제하지 않는 반면,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해서는 자꾸 삭제한다며 페이스북 코리아를 비판했다. 김씨는 이를 지지하는 인증 사진을 게재한 것이다.
문제는 메갈리아가 논란의 중심에 선 커뮤니티라는 점이다. ‘여성혐오’를 반대하는 커뮤니티이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남성혐오’를 부추긴다는 부정적 시각도 많다. 페이스북 이 지난해 두 차례 메갈리아 페이지를 삭제한 것도 이런 이유로 네티즌 신고가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네티즌들은 메갈리아가 페미니즘 운동을 왜곡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김씨가 성우로 참여한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의 제작사인 넥슨의 홈페이지에도 비난 글을 올렸다.
이에 넥슨은 지난 19일 김자연씨가 맡았던 게임 속 ‘티나’ 캐릭터의 성우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게임개발사 에이스톰도 같은 이유로 온라인 게임 ‘최강의 군단’에서 목소리를 연기한 김씨를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이례적인 신속한 하차에 ‘넥슨 보이콧’ 뿔난 네티즌들
넥슨은 과거 미성년자 성희롱 논란이 있었던 ‘메이플스토리2’의 성우를 교체하기까지 1주일이 걸렸던 것과 달리 문제 발생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김씨를 바꿨다. 이후 논란이 증폭됐다.
특히 넥슨이 평소에도 여성을 게임 속에서 성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불만이 함께 제기됐다. 넥슨은 최근 출시한 ‘서든어택 2’에서도 여성 캐릭터와 관련해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넥슨_보이콧’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넥슨의 결정에 항의했다.
더불어 넥슨의 이번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게임개발자연대는 성명서를 통해“넥슨이 김씨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러한 결정이 앞으로 게임개발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막고, 특히 여성 개발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3’ 페이스북 페이지는 22, 25일 이틀 동안 “김자연 성우의 부당한 교체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겠다”고 공지했다.
“메갈은 일베의 이란성 쌍둥이”?
반면 넥슨의 조치를 지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대표적 여혐 사이트인 일간베스트가 ‘애국 보수’가 아닌 것처럼 메갈리아 역시 페미니즘과 무관한 단순 남성혐오 사이트라고 지적한다. 각종 저질 단어를 사용해 선동을 일삼았다는 주장이다. 네티즌들이 직접 만드는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는 메갈리아를 ‘여성의 권리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같은 여성의 적이자 사회악인 집단’이라고 적시했다. (나무위키의 일부 페미니즘 관련 키워드에 대한 설명은 여성 혐오자들이 주로 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심지어 넥슨의 조치에 찬성하는 네티즌들은 김씨의 하차에 반대한 이들을 찾아내 역공을 펼치기까지 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아메리카노 엑소더스’라는 웹툰을 연재하는 한 작가는 김씨 지지 의사를 밝혔다가 웹툰 평점이 폭락했다.
“신중하지 못했다” 해당 성우 사과문 올려
사건이 확산되자 김씨는 더 이상 논란이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이 이런 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소송 프로젝트 후원으로 받은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린 것은 평소 성차별에 반대하는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명백히 제 잘못이고, 섣부른 판단과 행동으로 많은 분들, 특히 제작사인 나딕게임즈와 유통사인 넥슨에 큰 상처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일각에서는 넥슨의 부당 해고를 운운하기도 했으나 김씨는 “이미 지난달 녹음을 마쳤고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으니 부당해고라는 표현은 삼가 주시라”며 “저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비난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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