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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화가 오성철 “北 화가는 주체사상 기능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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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화가 오성철 “北 화가는 주체사상 기능공이죠"

입력
2016.10.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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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10여 년 화가로 활동했던 탈북 작가 오성철씨.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공
북한에서 10여 년 화가로 활동했던 탈북 작가 오성철씨.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공

“예술가요? 북한엔 그런 거 없어요.”

평안남도 남포 출신의 오성철(38) 작가는 18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화가는 예술가가 아닌 기능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오씨는 북한에서 10여 년 가까이 중앙당의 지시에 따라 홍보 포스터를 그리다 2007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커다란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현재 한남대 회화과에서 수학하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활동 중인 탈북 작가는 대략 30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제도와 이념이 전혀 다른 두 세계에서의 미술을 누구보다 잘 말할 수 있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지만 화가의 꿈은 늘 계급에 가로막혔다. 북한에서의 예술은 철저히 수단으로서 존재했다. 주체사상을 구현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따라서 출신 배경과 당에 대한 충성심 등을 국가가 평가해 선발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작품 창작은 철저히 국가의 몫, 화가는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만 집중했다. 개인의 개성이나 철학이 철저히 배제돼야 했다. “초상화 제작이나 수출용 작품 제작에 주력하는”북한의 화가들에게 (한국에서 사용하는)‘예술가’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연히 조선인민경비대 선전선동부 직관원으로 배치돼 미술교육을 받고 10여 년 간 그림을 그렸지만 “내면의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감추기는 어려웠다.

표현에 대한 갈증과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찾은 한국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이념과 체제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자 자유, 자아성찰, 인권 등에 관한 그가 이제껏 생각지 않았던 류의 고민들이 생겨났다. “북한에서는 ‘자유’와 같은 명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아요. 배움이 없으니 구체적으로 생각할 기회도 없었던 거죠.” 탈북 작가들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이 조금씩 묻어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성철 작가의 '오아시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공
오성철 작가의 '오아시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공

흔히 탈북 작가에게는 ‘남북한 정체적 이념에 대한 작업을 할 것’이라는 편견이 따라붙지만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숟가락은 오히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오씨는 작품을 통해 삶의 고단함 속에서 오롯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고 있다.

그곳의 미술에도 배울 점은 있다. “서구의 역사 혹은 대가나 특정 미술사조를 배경 삼아 개별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한국과 달리 북한미술은 무작정 외부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현주의에 입각해 작업하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다”는 것도 또다른 장점이다. 체제 내에서 창작욕을 불태우는 개별 화가들의 분투에도 높은 점수를 준다. “철저히 수단으로 이용되는 그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자체로도 기록물로서의 의미는 찾을 수 있다.“북한 예술은 한심하다,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탈북 작가들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오성철, 강춘혁, 조용 3인의 탈북 작가의 기획전 ‘경계에 선 이방인들’을 23일까지 갤러리 예술세계에서 열고 있다. 오성철 작가는 “있는 그대로 작품을 봐달라”고 주문했다. 편견 없는 작품 감상이 남북 문화 교류의 활성화와 나아가 통일 이후 문화적 이질감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고향은 늘 그리워요.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방인으로 살고 있고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예술가’로서의 길을 택한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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